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울리 Slowly Apr 19. 2023

인연, 카말라와의 재회

08.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승려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대부분의 여행자들이나 방랑객들도 이야기의 화제는 오직 *고타마와 임박해 있는 그의 *입적뿐이었다. 카말라도 부처를 향하여 순례길에 나섰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예전의 생활을 청산하고 정원을 고타마의 제자인 승려들에게 헌납하였으며,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순례자들의 친구이자 은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고타마의 *입멸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아들인 소년 싯다르타와 함께 간소한 옷차림으로 걸어서 길을 떠났었던 것이다.  



바주데바의 나루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소년 싯다르타는 쉬어 가자며 또다시 어머니를 졸라댔다. 카말라 자신도 지쳐있던 터였다. 그녀는 아들이 바나나 한 개를 씹어 먹고 있는 동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소년이 깜짝 놀라 어머니를 쳐다보니 얼굴이 겁에 질려 새하얗게 변해 있었으며, 옷자락 밑에서 작고 검은 뱀 한 마리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카말라는 그 뱀한테 물렸던 것이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입맞춤을 해 대고 어머니의 목덜미를 껴앉고 통곡하는 비명을 질러댔다. 마침내 그 소리가 나루터에 있던 바주데바의 귀까지 들렸다. 그는 재빨리 달려가서 그 여인을 팔로 안아 들고 배에 실었다. 아들도 함께 달려왔다. 곧 그 세 사람 모두 오두막에 이르게 되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모든 만남은 모든 헤어짐을 품고 있다. 재회는 곧 또 다른 헤어짐이고,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생명의 탄생은 예측 가능하지만, 생의 소멸은 예견되지 못할 때도 있다. 매일 이별하듯이. 나를 둘러싼 것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과,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과 매일 이별하듯이 그렇게 살아갔으면 한다.





비록 그녀가 의식을 잃은 채 뱃사공의 팔에 안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에게 잊힌 과거를 다시 떠올리라고 독촉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던 그 소년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심장이 마구 고동쳤다.



“그 애는 당신 곁에 있으니 아무 걱정 말아요.”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카말라는 그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독이 퍼져 마비되었기 때문에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그는 말하였다. “여보 당신 늙으셨군요.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세었군요. 그러나 당신의 모습은 그 옛날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잔뜩 먼지가 묻은 발로 나의 정원 안으로 들어오던 때의 그 젊은 사문의 모습과 닮았어요. 아, 나도 늙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늙어 버렸는데도 나를 알아볼 수가 있었나요?” 싯다르타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카말라, 나는 당신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소.” 그러자 카말라는 자기의 사내아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당신은 이 아이도 알아보셨나요? 그 애는 당신 아들이랍니다.”



그녀는, 자기가 완성자의 얼굴은 어떤가를 보기 위하여, 그 완성자의 평화를 호흡하기 위하여, 고타마한테로 순례의 길을 떠나려 했었는데, 고타마 대신에 이제 싯다르타를 보게 되었으며, 이것은 잘된 일이라고, 고타마를 만난 것만큼이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등불이 꺼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전율이 그녀의 사지 위로 퍼졌을 때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연인, 형제나 자매처럼 피를 나눈 관계도 아닌, 내가 아닌 타인.

서로 안에 불꽃을 발견하고, 불씨를 키우고, 활활 타올라 태워버리고 녹여버리는.

내가 그가 되기도 하고, 그가 내가 되기도 하는.

카말라는 싯다르타의 품에서 눈 감을 수 있어 행복했을까. 남겨진 아이가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안심했을까.

그 어떤 완성자 보다도, 자신이 신뢰하는 남자의 품 속에서 잠들 수 있어 괜찮은 삶이었다고 긍정했을까.

두려움이 작아졌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고타마: 석가모니. 부처님

*입적: 죽음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이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렀음을 의미

*입멸: 모든 번뇌를 소멸한 열반의 경지에 이름을 의미






매거진의 이전글 뱃사공, 바주데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