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그의 마음은 권태와 *번민 그리고 죽음으로 온통 가득 찼으며
그를 유혹할 수 있는 것
그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게 되지 않기를
안식을 얻기를
죽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강기슭에는 나무 한 그루
야자나무 한 그루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싯다르타는 그 줄기에 어깨를 기대고 서서
줄기를 팔로 껴안은 채
자기 아래쪽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초록빛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나무줄기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두 눈을 감은 채 그는 죽음을 향하여 떨어질 참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영혼의 후미진 곳에서
지칠 대로 지친 삶의 과거로부터 어떤 소리가
경련하듯 부르르 떨며 올라왔다.
그것은 한 음절로 된 한마디의 말이었는데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 ‘옴’이었다.
그 소리가 싯다르타의 귓전을 울리는 바로 그 순간
깊이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 갑자기 눈을 뜨고
자신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깨달음은 단지 섬광처럼 스쳐가는
한순간에 불과하였다.
싯다르타는 옴을 웅얼거리다가 피곤에 지쳐 온몸을 쭉 편채
야자나무 밑동에 풀썩 쓰러져 머리를 나무뿌리에 베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그는 생각하였다.
이 모든 덧없는 것들이 다시 나한테서 떨어져 나가 버렸으니
이제 나는 다시금 옛날 어린아이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백지상태로 태양 아래 서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의 것이라고는 없으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런 힘도 없으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내가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지금
머리카락이 벌써 반백이 다 된 지금
그 온갖 힘들이 다 약해져 버린 지금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어린아이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다니!
또다시 그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운명은 얼마나 기구한가.
결국 내가 또다시 어린애가 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
얼마나 많은 악덕
얼마나 많은 오류
얼마나 많은 구토증과 환멸과 비참 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난 길이었어.
자기 내면에 즐거움의 원천이자 즐거움의 소리인 그 새가
그런데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기쁨을 느꼈으며
이런 사실 때문에 그는 웃음을 지었으며
이런 사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반백의 머리카락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그는 생각하였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맛본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야.’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이제 싯다르타는
자기가 바라문으로서, 참회자로서
이 자아와 투쟁을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그 싸움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던가
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예감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많은 성스러운 구절이
너무 많은 제사의 규칙들이
너무 많은 단식이
너무 많은 행위와 노력이
자기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자기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언제나 현명한 자였고
언제나 최고의 열성파였으며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으며
언제나 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언제나 사제 아니면 현인이었다.
이런 사제 기질 속으로
이런 교만한 마음속으로
이런 정신적 성향 속으로
자기의 자아가 살며시 파고들어 와서는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동안
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 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어떤 스승도 어차피 자기를
구제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던
그 내밀한 음성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