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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Jun 24. 2023

할머니의 이상한 재주



나는 우리 할머니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할머니는 연세가 아흔 초반을 넘기셨다.

30년을 넘게 일 년에 최소 두 번은 시골에 가서 할머니와 친척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냈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명절이 되면 양가 부모님을 뵙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로

찾아가지 않았다.




17년도에 아빠가 돌아가시던 이후, 할머니를 만나는 게 불편해졌다.

할머니를 보면 아빠 얼굴이 겹쳐지는 바람에 속절없이 눈물이 났고,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가 불쌍해서 또 눈물이 나왔다.

전화 한 통 드리기도 겁났다.

“그래~ 세민이가~? 잘 있나?” 하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꽉 막혔다.

핑계가 참 한심하다.




할머니는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단 한 번도 서운한 마음을 내 비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안부를 살펴 묻고, 간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도 전해오는 그리움이, 그토록 가까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전화를 끊고 난 뒤에 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할머니는 이상한 재주가 있다.




혹시나 할머니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기 전에 먼저 가야겠다고,

조금이라도 더 또렷한 할머니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몇 년 만에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가서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와야겠다.






사랑해요.

거기 계셔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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