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간이 일 년 정도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날부터 내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린 듯했다. 가족의 죽음을 겪는 일은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나의 세상이 무너져 갔지만 외면의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유지되어 돌아갔다.
아빠 입관을 하게 된 날, 그날은 대학원 입학 논술과 면접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전날 가족들은 장례식장을 지켰지만 나는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엄마 아빠가 주무시던 잠자리에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는 긴 생각 없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죽은 듯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싫었다.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제 아빠는 우리 집에도, 병원에도 없었다. 북받쳐오는 감정에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그런 뒤에 세수를 하고 채비했다. 대문을 나서며 또 어릴 적처럼 엉엉 운다. 이성으로 강하게 누르지 않으면 울음 버튼이 저절로 눌러졌고, 체력이 남아 있으면 또다시 눈물이 났다. 두 눈은 붉게 부었고 머리에는 하얀 리본을 실핀으로 고정한 채 시험장에 앉아 답안지에 글을 채워나갔다.
친척, 아빠의 친구, 딸과 아들의 직장 동료와 친구. 둘째 날부터 장례식장은 찾아온 손님들로 분주해졌다.
사람을 참 좋아하던 아빠였다. 자신의 죽음을 추도하려 온 사람들을 아빠가 살아서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저녁 무렵 종종 함께 산에 다녔던 산행 팀원들이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대구까지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 넷 중 셋은 청력이 손실되어 소리를 잘 들을 수없는 농인이다. 수어를 모르는 나는 몸동작과 표정을 최대한 크게 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잠시 그들 곁에 머물러 앉았다. 동갑내기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활짝 웃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친척들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불과 몇 시간 전 입관식을 할 때 울부짖던 모습과는 상반되었으리라. 모든 게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죽을 만큼 슬퍼도 웃게 되기도 하고, 멀쩡한 듯 회사에 나가가도 했다. 혼자인 시간이 찾아오면 다시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어쨌든 세상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