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지인과 대화를 하다 유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말 유언. 아빠와 마지막 한 해를 보내는 동안 헤어짐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아빠는 가족들에게 날 잡고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가을로 접어들어 제법 공기가 선선해지고 있던 어느 주말에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성주 밭에 갔다. 그곳에는 자연 치유를 목적으로 지은, 어른 세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흙방도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일군 땅을 밟으며 잠시나마 평온을 느꼈다. 땅콩이며 배추며 그 사이에 자라난 농작물들을 돌아본 뒤에 밭 가꾸는 일을 조금 돕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곧 흙방에 들어가 배를 깔고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따라 들어왔고 나는 슬며시 옆으로 물러나며 아빠가 누울 자리를 비웠다. 아빠와의 대화는 나에게 늘 어색한 것이었다. 웬일로 내 곁에 먼저 다가올까 생각하며 쭈뼛거렸다. 아빠도 나처럼 방바닥에 누웠다. 그 순간에 아빠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감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기도 했고. 겨우 참아내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일도 안 하고 벌써 들어와서 눕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랬다. 우리 사이에는 잔소리가 익숙하고 편안했다. 아빠의 잔소리가 오히려 한없이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정말.
돌이켜보면 내 삶에 참 따뜻했던 시간이었고, 아빠도 우리와 성주 밭에서 보내는 시간을 참 행복하게 여겼던 것 같다.
"내가 가고 없으면 너희 엄마가 참 안됐다." 뜬금없이 아빠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형부도 일찍 떠나보내 힘들어했던 아내에게 아빠는 본인이 더 오래 살아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겠노라 젊은 날 엄마와 약속을 했단다. "내가 일찍 가버리면 너희 엄마한테 제일 미안하다..."
연이어 곧 군대 전역을 앞두고 있던 남동생을 두고 "자리 잡기가 어려울 텐데..." 하며 걱정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에 아빠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본인의 빈자리를 채울 셋째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결국 아빠는 내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아쉬웠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래, 내가 아빠에게 작은 효도를 했구나!' 내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 언니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잘 살아갈 거라 아빠는 믿었을 거다. 그러니 내가 아빠의 걱정을 조금은 덜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