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나는 순간, 가져갈 수 있는 것
추억 그리고 사랑의 순간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떠올려 보곤 했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들어온 아빠는 일일이 방문을 열어 자식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나갔다. 눈이 많이 왔던 어느 날, 우리가 자주 지나다니는 골목길에 쌓인 눈을 쓸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 아빠와 함께 아웃도어 매장에 가서 아주 가볍고 따뜻한 구스다운 점퍼를 샀다. 내가 사드릴 것도 아니면서 이건 안 어울린다 어쩐다 잔소리를 해가며 티격태격 함께 옷을 골랐다. 결국 디자인이 단순해 유행도 타지 않을 것 같은 검은색 점퍼를 골랐다. 아빠는 연신 옷이 참 가볍다고 말하며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 옷은 아빠가 가지고 있던 겨울 옷 중에 가장 값이 나갔고 가볍고 따뜻한 옷이었다. 아빠는 그 점퍼를 아껴서 가끔 좋은 날에만 입었다. 그 대신 평소에는 값싸게 산 별로 따뜻하지도 않은 파란색 점퍼를 자주 입곤 했다. 아빠가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매일 그 따뜻한 점퍼를 입으라고 했을 텐데. 아빠가 남기고 간 유품 중에 내 속을 가장 쓰리게 만들었던 것도 바로 가볍고 따뜻한 그 검은색 점퍼였다. 거기다 건강해지면 신고 다니겠다며 사둔 진갈색 캐주얼화는 두 번도 제대로 못 신고 덩그러니 남겨졌다. 거의 새것 인채 남겨진 것들.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보다, 옷이나 신발 한 켤레보다 수명이 짧은 인간의 생이 서글퍼서였을까.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나고 말도 못 하게 속상했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아빠는 무엇도 가져갈 수 없었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갈 수 없는 길을 홀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내, 딸과 아들의 눈빛과 눈물과 목소리를 가져갔을 것이다. 감사와 사랑과 아쉬움을 가져갔을 것이다. 함께 웃고 울었던 날들의 추억을 가져갔을 것이다. 아빠가 떠나던 날 아침, 아빠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서 큰 행운이었다. 아빠의 마지막 가는 길을 가족들과 함께 배웅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전하게 될 말을 평소에 용기 내서 조금이라도 해보면 좋겠다. 나중에 가서 안 해본 걸 후회하기 전에, 거창 할 것 없이 조촐하게나마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