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원리원칙과 계획이 중요하지만 나는 상황에 맞는 유연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질도, 표현 방식도 너무 다른 두 사람.
때론 참 신기하다.
한걸음 다가서려 하면 더욱 멀어지는 이 남자와 나는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었는지, 대화가 영 불편해서였는지 위장은 점점 굳어졌다. 그렇게 급체 한 뒤에 4일 동안 마시는 것 외에는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반갑다가도, 나를 몰아세운 것을 생각하면 괘씸하고 분했다.
남편이란 무엇인가?
연애할 땐 이 남자다 싶었는데결혼하니 이 남자뿐이었을까 싶은 남자. 한 여름에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는데, 이제는 손잡고 걷기엔 좀 어색한 사이가 돼버린 남자.
한편 내 아이와 똑 닮은 남자.연애할 땐 안 그러더니 갈치 살을 발라 밥에 얹어 준다.퇴근 후 매일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를 비운다. 다가가 손 잡아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허접한 실수를 해도 모른 체 넘어가 준다. 매번 편한 옷, 같은 옷만 입느냐고 옷 타박을 하면 어쩌다가한 번은 바꿔 입어준다. 싸우다 이긴 사람이 오히려 더 눈치 보게 되는 사이.다 늦은 밤 아기 똥기저귀 먼저 치우기 싫어서 가위바위보 삼세판에 심혈을 기울이는 두 사람.
아이가 네 살이 되고 처음 제주로 가족 여행을 왔다. 이틀째 되는 밤, 세 식구가 한방에 누워 서로 숨소리에 기댄다.내일부터 비가 온다더니,밤사이 찾아온 비가창문과 흙바닥을 투닥투닥 때린다. 밤은 깊어가고 빗소리와 남편 자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이 사람과몇 번 더제주에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우리가사랑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지 모른다. 미움을 오래 가져가서 뭣하겠는가. 기어이 버티고 있던 마음의 체증이그 재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