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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Apr 27. 2022

생일날 더 생각나는 엄마

꽃봉오리 엄마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생일은 온전히 나의 날이었다.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고, 스스로 선물 했다. 출산 이후에 변화 중 하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는 거다. 나를 세상에 내보내 준 람.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죽을힘을 다해 밀어고,  낫 없이 지새우며 을 엄마.

 


찬찬히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못다 핀 꽃봉오리 같다. 수줍지만 희망로 가득 찬 꽃봉오리.

  







엄마는 늘 웃는 사람이었다. 삶이 고되었기에 그 웃음 더 환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TV를 보다가도 잘 웃고, 눈물도 잘 흘리는 엄마다. 성장기 때 내가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고 항상 해보라고 했다. 오로지 경제적으로 많 도움을 주지 못해서 자식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늦은 시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집안 풍경이 설거지할 그릇이며 개야 할 빨래로 가득한 날도 엄마는 화내거나 꾸중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장사하느라 집을 비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길거리 장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중학생 무렵이었다. 아빠가 하는 일 만으로는 여섯 식구의 생계유지가 어려웠다. 수줍음 많고 내향적인 엄마가 점포 없이 장사를 할 거라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엄마는 이웃 아줌마의 소개로 길거리 장사 나서게 된다.

처음 엄마가 시작한 일이 도토리 묵과 두부를 떼다 장에서 파는 일이었다. 영천, 거창, 성주, 반야월... 지역 장이 서면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묵이며 두부를 팔았다. 처음 해보는 일 어색하고 부끄러웠을 텐데 엄마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엄마가 장 바닥에 홀로 앉아 있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떠올려 보았다.



시장에도 텃세가 있단다. 두부공장 차가 시장에 내려놓기만 하면 자리를 맡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눈총을 주는 시장상인들은 당연했고, 한 번은 다른 상인이 여기서 팔면 안 된다 묵이 담긴 대야를 발로 걷어  일도 있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거다. 노점 장사를 했던 경험을 두고, 내 새끼들 먹여 살리는 일인데 슨 일이든 못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마음에 빚이 있다.



그녀는 150cm 초반작은 체구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힘을 발휘한 초인이었다. 애처로우면서도 강인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굴하지 않고 끈덕지게 무언가를 해내는 힘이 있다면 그건 엄마로부터 온 것이다. 엄마 내게 모델인 셈이다.

 


자식들에게  배울 게 있다고 말주는 . 그녀에게 받은 사랑을 다 갚기엔 죽었다 깨나도 모자라겠지만 마의 여생을 우리가 곁에서 단단히 지켜주고 싶다.

엄마, 고마워.














멍멍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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