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오히려 변화를 꿈꾸게 되었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학생 시절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계기는 수영선수라는 꿈이 좌절되었을 때다.
초등학교 3학년 방과 후 체육활동으로 시작했던 수영. 실컷 물놀이를 하고 마치면 빵과 우유를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 꿈이고 목표였던 수영선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빵 때문에.
체육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한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이었지만 하루에 7.5km~8km 이상의 강도 높은 수영 훈련과 근육이 찢겨도 피할 수 없었던 웨이트 트레이닝은 온몸을 땀으로 적시게 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니더라도 초, 중학교 때 체력 등급은 항상 상위였는데, 체육고등학교 생활은 내 육체적 한계를 매일 절감하게 만들었다.
7개월 이상 생리가 없어진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힘든 건 둘째치고 가장 괴로운 것은 초등학교 때 이후 별로 자라지 않은 키만큼 수영 기록 역시 거의 변화가 없었던 거다. 슬럼프가 지속되었다.
누구보다 수영을 잘하고 싶었던 건 부모님도 코치님도 아닌 나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내 마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매일 스스로에게 실망했었다.
체육고등학교 코치님은 웃는 얼굴을 하고 어찌 그리도 모질게 제자들에게 매질을 할 수 있었을까? 코치님의 지나친 체벌은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했다. 하키 스틱, 골프채도 서슴지 않고 사용했는데, 맞으면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엉덩이와 허벅지, 손바닥에 멍이 지워질 날이 없었다. 검붉은색, 보라색, 파란색, 초록 그리고 노란색으로 익어가던 멍의 색깔들.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팀 친구들은 서로 기록 경쟁을 하는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내몰렸다. 기록을 재서 지는 사람은 공공연히 뺨이나 매를 맞기도 했으니 말이다.
학교가 지어진 뒤 첫 입학생을 맞은 외관이 훌륭했던 체육고등학교는 내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공허한 곳이었다. 더 이상은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동안의 과정을 모두 포기한 채 전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게 내가 살길이라 생각했다.
전학 가던 날, 코치님께 마지막 인사를 갔을 때 들었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 녀석이 부모님 고생시키는 거 생각 안 하냐? 공부도 못하는 꼴통이 나가서는 잘할 수 있을지...” 여전히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때 그 비아냥 섞인 말에 고개조차 바로 들지 못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체육고등학교에서 전학하고 나서 해방감도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다. 정말 코치님의 예언처럼 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숙사 짐을 빼서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부터 나는 식구들이 잠든 밤이면 책상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운명을 바꾸는 7가지 성공법칙’ 작가 칸바와타루가 쓴 이 책의 제목처럼, 지독히도 내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