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활명수 마니아
'죽고 싶다.'는 말 뒤에 숨은 말 '제대로 살고 싶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죽고 싶은 걸까.
아빠의 마지막 직업은 화물차 운전기사다. 50대 중반 넘어 중고 화물차를 인수해 시작한 일이 마지막 직업이 될 줄 아빠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아빠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거는 불편한 딸이었다. 아빠가 화물차를 인수할 때도 나는 지금 시작하기에는 무리라며 반대했었다. 아빠가 운전에 소질이 있고 잘한다는 걸 인정하지만 말이다.
"아빠 그 나이에 너무 무리되는 일은 안 하면 좋겠어, 그거 잠도 못 자고 해야 하는 일 아냐? 아빠가 운전을 잘하는 건 아는데... 하여튼, 아빠 나이에는 돈보다는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할 것 같아. 이제 우리도 다 커서 회사 생활하고 예전보다 돈도 덜 들어가잖아요." 아빠는 내게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아빠에게 차를 팔기로 한 젊은 화물차 기사의 월평균 수입도 이미 확인해 봤다고 했다. 매달 4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집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말에 아빠는 더욱 결심을 굳혔는지 모르겠다. 화물운송자격시험을 치를 때도 속으로 그냥 떨어지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운전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했고 자격시험에도 무난히 합격을 했다. 합격 후에 은근히 뿌듯해하며 기뻐하는 아빠의 모습에 나도 잠시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잠이 많은 데다 체력도 예전과는 달랐다. 우리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일을 시작하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빠의 표정은 이전과 달랐다. 장시간 차 안에서 운전을 해서 인지 얼굴도 햇볕에 까맣게 그을렸다. 자신이 밀어붙여 결정한 일이라 크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어두워진 아빠의 표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만한 일이 아닌 걸 알았지만 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늦은 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저녁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했다. 게다가 밥을 먹어도 속이 헛헛하다며 맥주잔에 소주를 반잔씩이나 따라 반주로 마시곤 했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된다며 가스활명수를 박스째 사다 놓고 마시는 아빠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둘째 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아빠! 이 늦은 시간에 저녁 먹는 것도 속에 부담인데, 소주까지 마시면 위장이 버텨내겠어? 그러니까 소화가 안되지. 술은 안 마시면 안 돼?"
아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술을 안 먹고 잠을 잘 수가 없다. 내가. 신경 꺼라."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빠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화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니, 어쩌면 너무 슬펐는지도 모른다. 당장 바꾸기 어려운 현실이, 아무런 힘이 없는 내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아빠를 저렇게 버겁고 외롭게 만드는 걸까.
아빠의 남은 날이 1년으로 정해진 이후부터 그날의 대화를 종종 떠올려 봤다. 아빠는 감정 표현에 참 서툰 사람이었다. 힘들다는 말, 외롭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할 줄 몰랐다.
수술 이후 아빠는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 꽤 오랜 시간을 매일 걷고 운동했고, 성주의 작은 밭에서 흙을 일구며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기적은 우리 가족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빠가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싶어 해 사갔다. 아빠가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구해드리고 싶었다. 복숭아 조각을 먹는 아빠에게 달콤한 국물을 권했다. 하지만 아빠는 설탕물이라 안 먹겠다며 손사례를 쳤다. 아빠가 이토록 건강을 챙기다니! 살짝 어이없으면서도 그때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아빠는 가족들 곁에 더 오래 머물기 원한다는 것을.
고된 삶에 지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
그 남자는 그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구나.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죽고 싶은 것일까.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좀 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