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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인더 Sep 25. 2022

호의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것들


호의: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해주는 마음.




금융공기업 계약직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그것이 나의 공식적인 첫 직장생활이 되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없는 빠듯한 월급이었지만, 사회초년생의 출근길은 설렘이 있었다. 강남역 11번 출구로 나가 한참 걸어올라 가면 지금의 신논현역 조금 덜 가서 일터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지하철 출구에서 벗어나 대로를 걸어갈 때 들이마시는 시원한 아침 공기 참 기분 좋았다.



법원에서 보내온 서너 장 되는 서류들을 총무팀에서 받아오면 매일 수 백장의 서류가 책상 한 편에 쌓였다. 법원 사이트에 접속해 사건 담당자를 찾아 서류를 배포하고 전자화하는 게 주 업무였다. 단순한 일이었지만 내겐 정말 어려웠다. 내 손은 너무 느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을 내가 오래 할 수도, 만족을 느낄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전문성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깨닫고 고민했던 시기였다.



힘겨웠던 동시에 그때를 떠올려 보면 참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대구에서 올라와서 고생한다며 부서에서 늘 돌아가며 점심을 많이도 사주셨다.

점심을 먹으며 진로 고민을 들어주었던 사람과 사내 수영 동호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초대해 준 사람이 있었다. 종종 집에 불러 가족과 함께 저녁을 대접해 준 사람, 소개팅을 시켜준 사람, 문화생활은 사치였던 나에게 공연 티켓을 선물 준 사람, 정직원만 입주할 수 있었던 사내 기숙사를 알아봐 준 사람,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부모님이 직접 제배한 사과와 고구마 박스를 보내준 사람. 돌이켜보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결국엔 사람, 따뜻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월세 내기도 빠듯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고, 실연에 울었고, 강남역에 고층 빌딩들을 올려다보며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하루씩은 스타벅스 커피에서 그린티 라테 한잔을 사들고 행복해던 시간이었다.

시즌 음료가 출시된다고 좋아하던 나에게 그때 우리 팀 과장님이 말했다.



"세민씨는 단순해서 좋겠다. 참!

커피 한잔에도 그렇게 행복하고 말이야!"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다 보니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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