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이 가하는 폭력

[조직행동 9] 명분과 권위 앞에 무너지는 양심

by witsfinder

"국가가 지금 매우 위태롭다네."

"국가를 위해서 자네가 이 일을 해야만 하네."


몇 편의 첩보액션 영화를 보다 보니, 이와 유사한 대사가 단골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서로 대사를 모방하는 것인지, 아니면 폭력의 정당화를 냉소적으로 보여줄 때 자주 사용하는 관행적인 대사인지는 알 수 없다.


대부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에게 암살, 파괴와 같은 인간으로서 양심의 갈등을 느끼는 일을 시킬 때 하는 말이다. 국가라는 대의가 잔혹한 행위를 할 명분을 제공한다.


1961년 8월 7일부터, 광고를 보고 지원한 40명의 남자들이 예일대학교 지하실에 도착한다. 그들은 학습효과 향상에 관한 연구에서 교사 역할로 참여한다는 안내를 받는다. 전기 충격에 의한 체벌이 학생들의 기억과 학습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라고 한다. 미리 주최 측과 진행계획을 협의한 배우들이 학생 역할을 한다. 물론 교사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교사 역할자 앞에는 15V부터 450V까지 단계적으로 전기충격을 높이는 스위치가 놓여 있다. 학생 역할자는 의자에 묶이고 전선이 연결된다. 이 장치는 실제로 전기를 발생하지 않는다. 교사 역할자는 학생 역할자에게 정해진 문제를 풀게 하고, 틀리면 전기충격을 가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교사와 학생은 칸막이에 가려 서로 보지 못하지만, 대화는 할 수 있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고, 칸막이 건너편 학생 역할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문제를 못 맞혀 전기충격을 높일수록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더 커진다. 학생 역할자는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멈추어 달라고 애원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교사 역할자는 계속하는 것을 망설이거나 주저한다. 그때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주최 측은 권위적인 목소리로 명령한다.


"계속하세요."

"이 실험은 당신이 계속 진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신이 계속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당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해야 해요"


이 실험에서 교사 역할자 40명 가운데 26명(65%)이 450 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실험을 설계할 때 예상하지 못한 높은 수치이다. 14명은 중간에 실험을 멈추었다. 참가자 일부는 땀을 흘리거나 몸을 떨고, 말을 더듬는 등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불가피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의 특수요원이 아니다. 4.5달러의 참가비를 받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이 실험은 1961년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tanley Milgram이 실시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권위적인 명령에 따라 양심과 도덕을 무시하고 잔혹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다.


이 연구는 이후 실험 방법이나 윤리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72년 C. L. Sheridan 등이 실험윤리 문제를 보완하여 사람이 아닌 강아지를 대상으로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의 '실제' 전기 충격을 주는 비슷한 실험을 했다. 결과는 Milgram의 실험과 유사했다. (50년 전 실험이다. 요즘은 동물학대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보였고, 일부는 흐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실험에 참가한 13명 남성 중 7명이, 13명의 여성은 전부 권위적인 명령에 복종했다.


2009년 J. M. Burger가 Milgram의 실험을 보완하여 관련 기관의 승인을 받고 실시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외에도 후속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순수한 청년이 군대에 입대하고, 광주 민주화운동 투쟁 현장에 진압군으로 투입된다. 그곳에서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괴로워하며 울부짖는다. 나중에 국가 기관에서 형사로 근무하며 차츰 고문 등을 자행하고 인간성이 파괴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철교 위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 보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결정적인 장면이다.


수십 년 전 전방부대에서 근무했다. 고참들은 악인은 아니었다. 후임병들이 휴가 갈 때 군복도 멋있게 다림질해 주고, 초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고참들에게 불려 가 구타를 당하는 의식이 있었다. 실탄과 폭약으로 무장하고 바로 눈앞 적과 대치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신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의식이 끝나면 막사 뒤편에서 서로 울먹이며 우리가 고참되면 이러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참이 되고 나서 후배들에게 폭력을 가하던 전우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오월에 피어나는 연두색 나뭇잎처럼 풋풋한 사람들이 기관이나 회사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다. 그들이 권력과 힘을 행사하는 일을 맡으면서 차츰 검고 딱딱한 가시를 날카롭게 세우는 것을 보아 왔다.


1961년 Milgram의 실험은 오늘날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 참고자료

Milgram, S.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 371–378.

Sheridan, C. L., et al. (1972). Obedience to Authority With an Authentic Victim. Proceedings, 80th Annual Convention of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65–166.

Burger, J. M. (2008). Replicating Milgram: Would People Still Obey Today? American Psychologist, Vol. 64, No. 1, 1–11.

https://en.wikipedia.org/wiki/Milgram_experiment

** 이미지 : AI 활용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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