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네미마을에서

백두대간 2

by witsfinder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른다면 이미 지나간 것은 과거고, 다가올 것은 미래다. 그런데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있다'고 인식하는 그 '현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나간 시간 속의 사건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는 어딘가에 온전히 저장되어 있지도 않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정된 사건들이 영화처럼 우리에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물들, 그리고 그 사물들의 끊임없는 변화뿐이다. 시간은 그 변화의 간격을 재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마치 거리를 측정하려고 만든 단위와 같다. 사물과 변화가 존재하는 이유와 원리는 이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11월 초, 바람이 거센 백두대간 정상에 홀로 서서 평소 하지 않던 생각을 잠시 꺼내 보았다. 이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서 있는 이곳은 귀네미마을이다. 지난 6월, 운전기사님과 함께 근처를 지나며 처음 이곳에 들렀다. TV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한 곳이라 했다. 국도에서 벗어나 가파른 산길을 자동차로 5분쯤 오르자, 산이 하늘과 맞닿은 자리에 마을이 나타났다. 드넓고 붉은 밭이 마을을 감싸고, 그 위로 웅장한 풍력발전기 날개들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정상에 이르기 직전, 한 중년 여성이 도로 옆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교회 예배나 결혼식에 갈 듯한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이 거친 산속에서 마주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해발 천 미터 정상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SUV를 큰 고목 옆에 세워두고 건너편 삼척 지역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능선 따라 풍력발전기 유지관리용 도로로 이동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감탄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때 혼자 왔었다면 그 능선길까지 깊숙이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높고 깊은 산속, 한강의 물줄기인 골지천이 흐르던 곳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해발 고도 632미터인 관악산 정상보다 높은 곳이었다. 자리에 댐이 세워지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주민들은 그보다 300미터 더 높은 이곳 백두대간 꼭대기로 삶의 터전을 옮겨 이 거대한 밭을 일구었다.


여름에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나 다시 이곳에 서니,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멀리 도로를 따라 자동차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흘러간다. 아마 저 아래 사람들은 이 까마득한 산 정상에서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내려간다. 눈 내리는 겨울에는 여기에 올라오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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