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면접과 잊혀질 권리

AI면접의 한계와 활용 ⑤

by witsfinder

채용 실무를 담당하던 시절, 하루 동안 200명 조금 넘는 입사지원자와 직접 대화한 적이 있다. 정식 면접이 아니라, 면담에 가까운 자리였다. 면접은 직무별로 구분된 면접위원들이 30분 이상 따로 진행하지만, 나는 이와 별개로 지원자당 2분 내외의 짧은 대화를 나누며 대략적인 관찰 의견을 기록했다.


면담에서 별도 평가 점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고, 정해진 선발 절차도 아니었다. 최종 면접이 끝난 후 지원자에 대한 나의 판단을 면접위원들의 평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분석해 보려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 1:1 면담으로 인사담당자가 판단한 것이 다수의 면접위원들이 평가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평가 결과가 아니라, 인간 기억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면담 인원이 50명을 넘어서자 뇌의 기억 용량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입사지원서 등 서류를 보지 않고서는 얼굴조차 떠올리기 힘들었다. 메모한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수년이 흐른 지금은 지원자들 가운데 아주 특이한 몇 명 빼고는 기억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두뇌는 이렇게 기억에 한계가 있고, 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량의 지원자 정보가 사람 머릿속에 저장되어 지속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낮다.


반면, AI는 어떨까? 기계가 수만 명의 면접에서 발생한 음성, 표정, 답변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저장 공간 확보 비용 역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데이터가 곧 권력인 시대에 AI의 완벽한 기억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가져온다.


AI가 면접에서 저장하는 데이터는 다양하다. 목소리, 말의 속도와 억양 등 음성 데이터와 얼굴, 표정, 시선, 자세 등 이미지 데이터, 그리고 답변 내용, 단어 선택 등 텍스트 데이터가 있다. 그 외 응시 패턴, 응답 시간 등 메타데이터를 고스란히 저장할 수 있다.


면접 지원자 데이터의 저장과 활용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선 '그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는가'이다. 채용하는 기업의 자체 서버에 저장된다면 그나마 데이터 관리 책임은 명확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AI 면접 시스템을 기업이나 조직이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체 서버가 없는 기업이 외주 업체의 서버나 해외 클라우드를 이용할 경우, 정보 보안의 취약성은 심각해진다.


'데이터를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AI 면접은 민감한 개인 신상정보를 저장해도 문제지만, 저장하지 않아도 문제다. 지원자나 감독기관이 선발 결정에 관한 자료를 요청할 때 공정성을 입증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저장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했다는 설명은 책임 회피로 보일 수 있다.


'채용선발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가령 수집된 데이터가 기계학습을 통해 AI 알고리즘 개발과 모델 개선에 사용된다면 지원자로서는 원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AI 면접 데이터의 더 큰 위험은 '다른 데이터와 결합될 때' 나타난다. 면접 영상과 답변 데이터가 채용 후 인사기록카드 등 다른 데이터와 연결될 경우 지원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디지털 프로필을 만들게 된다. 지원자는 면접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면 중요한 인권 침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원자가 AI 면접 자체 또는 면접 데이터의 저장 및 활용을 거부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도 있다. 물론 당사자 동의를 받으면 문제없다고 할 수는 있지만, 채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원자가 과연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동의가 자발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고려할 때, 개인정보 관리 체계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미비한 상태에서 AI 면접 활용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AI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입사지원자에게는 원치 않는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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