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라는 무대에서 역할과 연기

면접에 관한 근본 질문

by witsfinder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의 상당 부분이 주어진 역할에 대한 '연기'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연극에서처럼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라 말하면 진지한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일까?


퇴직 후 외국계 기업 대표로 새로 일을 시작한 선배가 있었다. 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가 시급한 상황인데, 상급 모회사는 미온적인 태도로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그는 회의 참석 전, 영어로 '화내며 호소하는 대사'를 적어두고 여러 번 연습했다. 실제로 화가 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회사의 입장을 강경하게 전달하기 위해 계산된 연기를 한 것뿐이다.


영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person'의 어원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다. 본래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을 의미했던 이 단어는, 연극에서 등장인물이라는 뜻을 거쳐 지금은 개별적인 인간(인격)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인간을 사회적 배역을 수행하는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상당 부분 주어진 역할에 맞춰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


성장기 청소년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집에서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범생으로 행동한다. 사춘기 또래 집단에서는 동질감을 얻기 위해 비속어를 섞어가며 말하고, 거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각 집단이 요구하는 모습에 충실한 일종의 연기인 셈이다.


부모라는 역할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을 때 막중한 부모의 역할이 주어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본능이 크게 작용하지만, 많은 부분은 사회적·관습적으로 정해진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많은 부모들을 오랫동안 보아왔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 틀 안에서 따라 한다.


레스토랑의 종업원은 고객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결같이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주문받을 때는 잘 경청하고, 접시를 테이블에 놓을 때는 깔끔하고 능숙하게 행동해야 한다. 아무도 식당 종업원이 고객에게 학교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 식당 종업원이 여행을 떠나 호텔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는 순간, 더 이상 그 배역을 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사회적 관습이 짜놓은 손님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사회적 대본은 개인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약속이다.


조직 생활 역시 연기의 연속이다. 임금교섭 등 각종 협상 테이블에서 화내면서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모두 조직이라는 무대 위에서 수행되는 역할이다. 조직에서 누군가는 지시하고, 누군가는 따르는 역을 맡는다. 대부분 평범한 역할이 주어지지만, 원하지 않더라도 악역이 주어지기도 한다. 개인의 본래 특성과는 관계없이 정해지는 일이다.


단위 조직을 이끄는 부장급이나 그 이상의 지위로 승진하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이 해 온 것처럼 정해진 역할에 적응한다. 그 역할에는 연극처럼 일종의 대본이 있다. 그 대본을 얼마나 잘 소화해 설득력있게 동료와 부하에게 전달하느냐는, 그 역할에 대한 몰입과 연기력에 달려 있다.


조직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상사와 부하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된 옛 상사의 상급자로 발령받는다. 불편한 관계지만 이번에는 예전에 하던 역할을 서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에서 배정받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에서 인재를 뽑는다는 것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할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래의 자아가 일과 적합한지를 밝혀내기보다는, 그 일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얼마나 잘할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고, 모든 사람은 배우에 불과하다. 그들은 각자 퇴장하고 등장하며, 사람은 일생 동안 여러 역할을 맡게 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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