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오전 열 한시 여섯 번째 수다모임(1)
“오늘도 둘씩 짝을 지어봅니다. 마침 앉은 순서도 지난주와 같으니 같은 짝을 한 번 더 하면 되겠네요. 방식은 같습니다. 대화 나누세요, 지난주 어떻게 지내셨는지.”
연마담이 말했다.
“저희 남편이 치앙마이에 왔어요. 엄청 반갑더라고요. 헤어져 있으면서 다시 안 보고 싶어지면 어쩌나 했던 시간이 무색하게요. 걱정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구경도 다녔어요. 연애하던 시절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웃고 그랬어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웠어요. 친근하고 이상한 시간이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편분은 언제 가세요?”
“2주 일정으로 왔는데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서글퍼요. 오늘도 상담 올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자리 비우는 게 미안하더라고요. 아니, 그것보다는 제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게 더 큰 것 같아요.”
“저는 뭐 똑같이 보냈어요. 지난주처럼 집안일하고 육아하고 남편하고는 여전하고요. 여기 생활은 참 변화가 없네요. 하다못해 참석할 경조사도 없으니 주말도 한가해요. 아,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좀 읽었어요. 사실 제 입장도 그렇고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억지로 펼쳐서 읽었거든요. 이러다 바보 될까 봐.”
“저도 책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게 되더라고요.”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이어진다. 지난주와 같다. 이상하게 김새고 이상하게 감정이 실리지 않는 대화다. 특별히 싫은 사람도 아니고 불편한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녀도 그럴까? 나는 또 궁금해진다. 어쩌면 온 관심이 남편에게 가 있는 터라 집중이 되지 않는 걸 은하 탓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가브리엘님은 이번 주는 지난주보다는 덜 돌아다니셨대요. 좀 걷고도 싶었는데 도저히 오토바이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대요. 또 누가 추천해줘서 가봤는데 구시가 쪽에 맛있는 일식집이 있더래요. 얼마나 구석진 데 있는지 말로 설명해서는 찾아가지도 못할만한 자리에 있다는데 겨우 찾아가니 온통 일본사람들밖에 없어서 진짜 일본 온 줄 알았대요. 좁은 가게에 사람이 득시글한데 누구 올 때마다 어이어이, 하면서 반가워하는 걸 보는데 좀 부럽더래요. 저도 그 기분 알 거 같아요. 여기 와선 맨날 혼자 밥 먹으러 다니니까. 왜 한국 가게는 이런 데가 없지? 하며 틈새 공략도 생각해봤는데 돈이 없어서 생각만 하고 돌아오셨대요. 그런데 가브리엘님 음식은 잘하세요?”
“먹을만하게는 하는 것 같습니다. 돈 받고 팔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요. 엘리님은 미용실에 다녀오셨답니다. 찾고 찾아서 님만해민에 한국처럼 머리 해주는 델 가서 염색도 하고 파마도 했대요. 사실 뭐가 달라진 건지 못 알아봤다고 말했다가 엄청 구박 들었습니다. 그런데 머리하는데 4천밧(12만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내 한 달 방값에 맞먹는데. 그 정도면 한국보다 더 비쌀 거 같아요. 제가 싼 데만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머리하고 기분 좋게 나왔는데 갈 데도 없고 자랑할 친구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서운했대요. 그리고 엘리님은 이번 주에도 매일 밤에 술 먹었대요. 내가 다 일러줄 거라 했죠? 이러다가 우리 동네 주정뱅이 타이틀을 엘리님에게 뺏기게 생겼어요.”
엘리와 가브리엘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 팀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은하에게 들었던 이야기 거의를 복기해냈다. 지난주는 멍하니 있다 당했지만 이번 주는 발표할 것을 알고 있으니 잘 들어두리라 생각했던 덕분이다. 또 앞의 두 사람이 워낙 완성도 있게 발표를 하니 은연중에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은하도 나에게 들었던 말을 잘 전달했다. 잠깐 말이 없던 윤마담이 은하에게 질문을 했다.
“은하님, 개똥이님 남편은 언제 베트남으로 돌아가시나요?”
“며칠 안 남았대요.”
“남편분과는 뭐하셨대요?”
“맛있는 거 드시고 근처 관광하셨다는데요.”
다음은 나였다.
“개똥이님, 은하님은 어떤 책을 읽으셨대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묻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은 대답이었다. 나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책 이야기가 나왔더라면 제목을 묻지 않았을 리가 없는 나인데 어쩐 일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저는 가브리엘님과 엘리님의 대화를 들으면서는 궁금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엘리님이 어느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을까? 가브리엘님이 아는 그 식당은 내가 아는 그 식당과 같을까, 그 정도? 그런데 개똥이님과 은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궁금한 게 아주 많았어요. 개똥이님은 남편분과 무엇을 드셨을까, 태국 음식이 남편 입에는 맞았을까. 치앙마이 커피는 좋아하시려나. 어쩌면 개똥이님처럼 커피를 안 마시시려나. 관광지는 어디를 가셨으며 어떻게 느끼셨을까. 오랜만에 만나서 사이좋게 지냈을까. 혹시 싸우지는 않았을까.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달라진 점은 없을까.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셨다고 하시는 은하님은 그래도 매일이 찍어내듯 같은 하루였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 똑같은 하루였다 하실까. 하다못해 오늘은 아이가 우유를 엎어서 화가 났고 어제는 뽀로로 노래를 불러줘서 웃었다는 일상은 없었을까. 저녁에 무친 나물이 그 전날 한 것보다 더 맛있지는 않았을까. 한국에서 가져오셨다는 책은 제목이 뭘까. 읽고 어떤 걸 느꼈을까. 나에게 좀 빌려줄 생각은 있을까.”
윤마담의 마지막 말에 엘리가 작게 킥킥거렸다.
“엘리님과 가브리엘님이 한번 말씀해 보세요. 지금 개똥이님과 은하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요. 이건 저 두 분을 위해 하는 말이니만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두 분을 돕는 거예요.”
윤마담이 두 사람에게로 질문을 던졌다.
“음, 저는 두 분이서 대화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주에도 좀 딱딱하게 말하지 않았었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뭐 그렇게 부드러운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엘리가 말했다.
“저도 엘리님이랑 비슷한 느낌 받았습니다. 뭐랄까, 서로 참 관심이 없나 보다는 느낌이랄까요? 아니 뭐, 두 분이 잘 안 맞을 수도 있죠. 전에 개똥이님이 부부간에 서로 바꿔놓은 것 같다고도 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가브리엘의 말에 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한 말이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잘 기억해둬야겠다.
“두 분은 어떠셨어요?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윤마담이 물었다.
“저는 가브리엘님처럼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씀하시는 거 들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음, 가브리엘님 말씀과는 별개로 사실 지난주에도 오늘과 같은 느낌을 받았었어요. 어쩐지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는 느낌? 분명 말을 주고받고 있고 반응도 있는데 뭔가 합이 안 맞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가브리엘님과 엘리님이 발표를 하시는데 두 분이 이야기를 정말 잘 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들었어요. 사실 저는 은하님과 말하는 게 별로 재미있지 않았거든요.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만 생각했지 이유는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오늘 지적을 받고 나서야 뭔가 좀 알 것 같아요.”
“말씀해 보세요.”
연마담이 부드럽게 유도했다.
“그게, 제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막 내뱉은 말에 은하님이 기분 나쁘실까 봐 걱정돼요.”
시켜서 하는 대화니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딱히 지루하거나 어색한 것도 없이 대화에 임했다던 은하는 내 말에 흥미를 보였다. 자신은 괜찮으니 말해 보라는 말을 듣고서야 입을 뗐다.
“은하님은 딱 있는 사실만 말씀하세요. 그 속에서 뭘 느꼈는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말을 안 하시더라고요. 제가 제 생각과 느낌을 말해도 반응이 없고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제가 말했던 감정보다는 사실만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는 그걸 말로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런 느낌만 받은 정도였지. 지난주에 그러고 나니 저도 오늘은 알게 모르게 사실 전달만 하려고 애를 썼어요. 최대한 말 할 거리를 줘야 한다는, 정보 전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발표는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말을 길게 해도 사실 전달만 하고 나니 막상 발표에서는 할 말이 많지 않았어요. 은하님은 제 감상을 지웠고 저는 은하님의 감정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보니 저는 오늘 말하는 것만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라 질문하는 것조차도 소극적이었어요. 최대한 은하님에게 맞춰서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개똥이님은 은하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으셨나요?”
“글쎄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아, 피부요. 은하님이 지난주부터 부쩍 혈색이 좋아지셨어요. 좋은 일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니어도 화사해 보이니까 좋다고 칭찬해드리고 싶었어요. 생각만 하고 지나쳤지만요. 그리고 끼고 있는 반지가 참 잘 어울린다고도 말하고 싶었어요. 또 아이들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어요. 나이는 몇 살인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궁금했고 치앙마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도 궁금했어요. 또 매반하고는 가족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도 궁금했고요. 그리고 읽으셨다는 책 제목도요.”
“저런, 개똥이님은 은하님께 궁금한 게 많으셨네요. 진작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으면 됐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왜 자기 페이스대로 대화를 끌고 가지 못했을까요? 제가 보기에 개똥이님은 기가 죽은 것 같아요. 왜 그렇게 기가 죽었어요?”
기가 죽었다. 윤마담의 말에 치밀어오르듯 거부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