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26) - 싼캄팽, 왜 이제야 왔을까

싼캄팽, 왜 이제야 왔을까

by 서화림

어쩌면 바로 싼캄팽으로 향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 보상 마을이 있다고 했고, 언제나 그렇듯 설사 볼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그 볼 것 없는 것이라도 눈에 담고 싶었다. 게다가 다른 여행자에게 전해 들은 ‘정형화된 보상 마을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보상 마을’이라는 여행담은 구미를 당기는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몇 번의 큰소리 “보상!! 보쌍!! 버상!! 버쌍!!” 끝에 기어코 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치앙마이 시내에서 보상 마을까지는 멀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 황급히 차를 세우고 화장실을 물어보러 급하게 뛰어들어갔던 세븐일레븐에서는 자기네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급해요, 급해. 혹남 혹남.” 그녀들이 알아들은 건 혹남(화장실)이었겠지만 사실 그보다 더 쓸모있는 건 급해요와 뒤따른 바디랭귀지가 아니었을까. 동동거리며 들어가선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길. 동그란 눈의 귀여운 아가씨들이 눈을 마주치기도 전부터 이미 웃고 있다. 아하하 실없이 마주 웃으며 캅쿤카(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뒤뚱거리며 뛰어나온다. 창피해.


금세 도착한 보상 마을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여긴 그냥 제법 널찍한 건물이지 않은가. 여기가 ’마을’이라고? 능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보상 마을에 들어가기도 전에 뛰어나가 건물 바깥의 모습은 어떤가 살펴본다. 대로변으로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 투어로 방문했다면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던 여행자의 설명대로 보상 마을의 새로운 얼굴을 찾는 걸 오늘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예상했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중얼거리며 건물로 들어가 기념품 구경을 하고 우산 만드는 모습을 보러 간다.


모두 숙련된 솜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을 장인이라 불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서양인들은 연신 감탄하며 사진 찍기 바빴지만 사실 손재주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뛰어나지 않은가. 완성된 우산의 화려한 색감이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그것뿐. 분업이 잘 된 우산 만들기 공정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장면은 나무를 다듬는 과정이었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주고 손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초로의 목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작업은 사실, 관광객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금방 돌아올 것을 알았을까. 운전석이 비어있는 차 앞에서 잠시 떠들고 있으니 옆에 주차되어 있던 썽태우 뒷좌석에서 능이 나타난다. “능, 빠이 싼캄팽 고고.” 태국어와 영어를 담은 한 문장. 말 없는, 그리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아쉬운 청년 능은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보상마을에서 싼캄팽으로 가는 길은 글쎄, 초원이라도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하는 게 옳을 텐데. 반듯하게 정비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아스팔트 깔린 도로를 달리며 왼편엔 여문 들판, 오른편엔 풀무지 황량한 초원을 좀 보았다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느낌이 들어버린 것을.


평생을 바닷가를 끼고 살아온 나에게 짠 내 없는 공기는 텁텁하게만 느껴진다. 치앙마이, 빠이, 바다가 있을 것만 같은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완벽한 내륙이다. 나는 그 아쉬움을 세계에서도 손꼽힌다는 온천으로 보상받고자 했었으나 생활권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을 혼자서 찾아가기란 여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세 시간쯤 걸릴 거라 능에게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 그에게 “어쩌면 네 시간!”하며 여지를 남긴다. 입장권을 사기 전, 가게로 들어가 숯불에 구운 닭과 돼지고기, 날계란을 산다.


목욕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온천물에 계란을 삶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건데 드디어 오늘 소원풀이를 하게 됐다. 유황물에 삶았다며 파는 계란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계란을 익혀본 적은 없지 않은가. 계란 노른자를 하나만 먹어도 곧잘 체하던 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치앙마이에 와서는 부쩍 삶은 계란이 먹고 싶으니 이참에 잘된 일이다. 세 개는 먹으리라 다짐하며 둘이서 계란을 열 개나 산다.


공원 조성이 잘 되어있다는 것은 오기 전 사진을 통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눈에 담는 것은 사진 속의 고정된 세상을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뿌삥 궁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치밀하게 구성된 탓에 자연미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후끈한 지열도, 습기 찬 공기도 환상적이었다.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온천’에 왔다는 것을 체감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평일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길게 깔아놓은 도랑을 따라 족욕을 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는 사람들. 그림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족탕을 따라 올라간다. 위로 갈수록 물의 온도가 높아지니 되도록 높이 올라가 계란을 빨리 익혀야겠다는 계산이었다.


마침내 그 시작점에 다다랐을 때에는 생각보다 물이 뜨겁지 않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물론 발을 담그기에는 턱없이 뜨거웠지만 100도는 되어야 물이 끓지 않겠는가? 이 온도로 계란이 익기는 할지 남편과 마주 앉아 티격태격한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는 오늘도 온도와 시간을 계산하는 이과생 앞에 처참히 무너진다.


계란이 익기를 기다리며 따뜻하게 데워진 돌바닥에 앉아 노곤해진 몸을 주체 못 하고 있자니 어느새 동네 개들이 몰려들었다. 여전히 덩치가 큰 개들은 무섭지만 오늘 만난 개들은 눈빛이 온순하다. 우리가 사 온 고기 냄새에 이끌려 왔겠지만 그저 좀 달라고 조르는 정도. 누구도 위협이 될 만큼 굶주리지도 절박하지도 않다. 이내 포기해버린 그네들 중 절반은 다른 대상을 찾아 떠나고 나머지 절반 정도만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우리의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15분쯤 지났나, 계란 하나를 꺼내 깨본다. 와지끈. 남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계란은 하나도 익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한 녀석이 깨진 계란을 차지하는 호사를 누린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계란을 삶는단 말인가? 가만히 둘러보니 온천수가 분수처럼 솟아 나오는 근처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가려는 나를 남편이 위험하다며 가지 못하게 했는데 화상주의 경고문에 속았다.


겨우 찾은 온천수 웅덩이에 계란 바구니를 걸고 안내문에 따라 십 오 분 기다리기로 한다. 계란은 어디서 삶는지 물어보는 태국인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돌아와선 연신 시계만 힐끔거린다. 드디어 십 오분. 마구 뛰어가서 계란을 건져와서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한 상 차린다. 급한 마음에 한 김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뜨거운 껍질을 까서 그 말랑한 속살을 입에 물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건 너무 맛있지 않은가. 밖에서 사 왔던 고기들은 대부분 속이 덜 익은 상태라 많이 먹을 수 없어서 깨끗하게 살을 발라내 주위에서 포진하고 있던 멍멍이들 중 마른 녀석 순으로 입에 넣어주었다. 내게 계란 익히는 곳을 물어보았던 그 청년들은 지금까지도 계란을 꺼내오지 않았다. 이거 이거, 계란이 다 타버리는 거 아냐?


계란을 익히고 식사를 하며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해 목욕하러 가게 되었다. 목욕은 30분이면 충분하다 생각하는 남편에게는 나머지 시간 동안 마사지나 받고 있으라며 돈을 쥐어 준다. 생각보다 열악한 시설에 놀라며 들어간 개인탕은 막상 온천수가 채워지자 불평이 쏙 들어간다. 예민한 피부에 유황물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온천이 아무리 좋아도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 부랴부랴 씻고 나가 남편을 찾아간다. 두 시간짜리 마사지가 끝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다는 것을 보니 내가 정말 서둘러 목욕을 마치긴 했나 보다. 그렇게 해서 나도 남편 옆에 누워 예정에 없던 마사지를 한 시간 받고 나니 주변이 이미 어둑하다.


온천 후 도이수텝에 간다는 계획은 어려울 것 같다. 추가 요금을 내고 다녀올 것인지에 대해 의논 끝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얘기했던 것보다도 더 오래 온천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구에 앉아 경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능은 우리를 보자 벌떡 일어난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함께 온천에 가자고 할걸, 후회한다.


도이수텝이 취소라는 말에 능도 기쁘고 우리도 기쁘다. 전화통화를 하는 능의 목소리가 밝고, 몇 마디 들리는 아는 단어로 미루어 "오늘 일찍 들어갈 수 있겠다, 같이 저녁 먹자." 하는 거 아니겠냐, 다정한 가장이라 감탄하며 우리끼리 섣부른 추측을 늘어놓는다. 퇴근 시간이라 정체 되는 도로를 지나 센탄 앞에 멈춰 섰을 때 능은 생각만큼 기뻐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내밀었던 팁이 그의 성에 차지 않았던가 보다.


마무리가 어정쩡하기는 했지만 적당히 풀어진 몸을 이끌고 밥을 먹고, 농담을 나누며 걸어서 집에 돌아간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초행길이었던 오늘의 행선지들은 한결같이 다녀와 봄 직한 곳이었다. 이제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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