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스트레인저(1)
야무지게 싸놓은 여행 가방을 두고 외출한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그 그저께도 그랬고 그 그저께의 전날도 그랬으니 좁은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저 가방은 내일도 모레도 자리를 지키고 있기 쉽다.
오늘도 있는 힘껏 가방을 흘겨보곤 복도가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문을 닫고 나선다. 내내 등 뒤를 불편하게 하는 이 감각은 남겨진 가방이 쏟아내는 비난 때문일 거다. 게으름을 핑계 삼아 보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그것조차 납득 가능한 답이 아닌 것 같다. 알 수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가고 싶은 마음도 충만하여 짐까지 싸놓고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이 안정을 잃는다. 좁은 집안을 맴돌며 ‘날이 밝는 대로 나가야 한다’와 ‘내일 가자’가 다툼을 벌인다. 새벽 두 시. 나처럼 밤새 깨어있는 옆집 사는 아가씨에게 전화를 건다. 나랑 같이 빠이에 가지 않을래요? 그녀는 약간 내 눈치를 보고, 또 가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마음을 본다. 1박만 하고 오자는 대답이 그녀가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적어도 3일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나의 절충안. 시간의 사이에 합의점은 없다. 내일 내가 없어도 놀라지 말아요, 전화를 끊는다. 가자, 가야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야 서비스에 전화를 건다. 다행히 두 시간 뒤 아홉 시에 출발하는 빠이행 미니밴에 한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한다. 픽업 시간에 맞춰 출발 준비를 하며 ‘태국인 타임(어쩔 땐 정시도착, 어느 땐 한정 없이 늦어진다)’에 맞춰 느지막이 나갈까 고민을 하다 딴에는 요령 있다 생각하며 약빠르게 구는 날은 꼭 낭패를 보니 시간 맞춰 나가는 게 좋겠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무엇보다, 일단 가기로 마음먹었더니 더는 가만히 앉아 시간이 가기를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은 게 먼저였을까 그늘로 자리를 옮긴 게 먼저였을까. 약속한 아홉 시가 한 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소식이 없다. 오늘도 태국인 타임에 걸렸다. 10분만, 5분만, 3분만 더 기다려 보다 기어이 한 시간을 넘기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전화를 걸 때면 때맞춰 골목길로 들어서는 버스가 보인다는 법칙은 정설에 가깝다. 혹시 나를 잊고 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 확인 전화 따위는 걸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늦는 것일 뿐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정말이다. 그것 보라, 저기 골목을 돌아 아야의 버스가 오고 있다. 그러나 마음 놓기는 이르다. 각 지역에서 여행자를 태워 아야의 사무실에 모아놓고 차 한 대에 태워야 비로소 빠이로 출발하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빠이 세 시간의 여정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다.
“Is it yours(이거 니 거니)?”
엉덩이에 깔려있던 물병을 건네며 짜증을 숨기지 않는 남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가방을 치우고 자리를 차지해버린 커플은 내 자리에 놓여있던 물병을 돌려주는 것까지 뻔뻔하기 그지없다.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쏘리, 사과를 해버리고 만다. 사람을 가득 채운 11시 20분, 그러나 사실은 아홉 시에 출발해야 했던 빠이행 미니밴이 시동을 켠다.
정말로 ‘여행객’ 같아 보이는 그들 여행자들은 출발지에 대한 미련은 없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편히 앉으려 꼼지락대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들은 국적을 나누기는 하지만 이름을 나누지는 않는다. 상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밤을 새운 탓인지 빠이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꼬불 길에 대한 걱정 탓인지 벌써 멀미가 밀려온다.
앞자리에는 동양인 여자가 한 명 앉아있다. 어쩌면 일본인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한국인 같기도 하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읽었다. 동그란 얼굴이 얼핏 중국인 같기도 한 그녀는 한국 사람이다.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상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여행 기간 방을 함께 쓰는 것을 결정함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만나 함께 묵을 숙소를 정할 때는 무언의 전제가 뒤따른다. 당연히 침대는 한 사람에 하나씩.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는 이 조건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미처 알지 못했던 대가로 여자들은 오후 세 시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숙소를 찾아 헤맨다.
대체 왜 빠이에는 트윈룸이 없다는 거야? 를 Why! 라는 짧은 탄식에 실어 보내는 내게 리셉션의 그녀는 This is Pai(빠이잖아).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누구도 트윈 침대를 원치 않는다는 친절한 부연 설명은 한 귀로 흘린다. This is Pai. 그것만이 내게 가치 있는 말이다. 그것은 내게 내려진 일종의 선고였다. 너는 빠이에 있다. 갑자기 다가온 실감에 더위를 잊는다. 이미 싸놓은 짐가방을 외면하며 그렇게나 고민하고 망설이던 시간은 과거가 되고 오늘의 나는 빠이에 왔다. 갑자기 그 사실이 기쁘다.
결국 트리플룸을 구해 머물게 됐다. 덕분에 방이 넓고 쾌적하다. 그녀는 큰 침대를 내게 양보한다. 뒤늦게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은 련, 스물여섯 늦깎이 대학 졸업생이라 자신을 소개한다. 군대라도 다녀 왔냐는 말에 큰 소리로 웃는 그녀는 이름같이 맑은 사람이었다. 입사를 앞두고 한 달 예정으로 태국과 라오스를 여행 중이라는 그녀는 앞서 6개월은 남미 여행도 다녀왔다고 한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목소리 야무진 행동. 아직 어린내가 나는 그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