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30) - 헬로, 스트레인저(3)

헬로, 스트레인저(3)

by 서화림

외롭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그녀는 내 이웃 블로거였다. 무지하게 감각적인 글을 쓰는, 그리하여 내가 짝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은 현정이다. 현정이 가진 재능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혹에 빠진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그녀의 글이 증거야. 글은 마음이야.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험한 굽잇길을 뚫고 찾아가기에 빠이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었다. 다만 춥고 외롭다는 현정의 글을 보자 불쑥 찾아가 그녀의 재능을 펼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여정에 나를 위한 부분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짐을 싸두고도 선뜻 길을 나설 수가 없었다. 가서 그녀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몰랐다.


이름 석 자 적은 종이를 거머쥐고는 다니면서 혼자 다니는 한국 여자마다 붙잡고 그 이름의 주인을 찾는 것도 극적이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다 동명이인을 만나 멋도 모르고 하루를 같이 보내는 극적인 상상도 했었다. 그러다 그녀에게 연락해 지내는 곳을 알아냈다. 어쨌건 나는 현정을 만나고 싶었다. 그녀가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면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떠나야 할 것 같아요.

흐르는 물을 막을 재주는 없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은 참 잘 갔다. 오늘은 치앙라이로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내일은 라오스로 떠나는 사람을 배웅한다. 그리고 모레는 현정이 떠난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누군가 떠날 것이다.


채 정이 들기도 전 떠나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기 위해 여행자로 북적이는 버스 터미널 앞에 서서 나는 자주 외로웠다. 이별에 담담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뒷모습을 먼저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늘 기회가 없었다. 나는 찾아 들고, 나는 떠나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그 모습이 초록 점으로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여 있던 사람의, 남편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풍경인 듯 박혀 있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멀어져 간 택시의 뒷자리에서조차 나는 떠나는 사람이었다.


오며 가며 한 마디씩 인사를 나누고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까지 했을 때 마침내 그들은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이름도 모를 소중한 사람들! 그들을 떠나 보내며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별을 돌아보았다. 나를 떠나 보내던 그의 슬픔을 겪어보았다. 서글프고 아팠다. 버스가 떠나기 직전 이름조차 모르는 나를 사진기에 담고 떠나갔던 그 여행자는 타인이 아니었다.


배웅이 힘들다는 현정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밝은 미소로 떠나 보내고 쓸쓸히 돌아서는 그 발걸음을 안다고 믿었다. 마침내 련이 떠나던 날. 나는 련을 홀로 떠나게 했다. 스치는 사람들만 가득한 이곳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는데 나는 그녀를 배웅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보내는 사람의 슬픔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련이 떠났던 그 저녁, 다음날 방콕으로 떠날 거라던 현정의 말이,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말해주었고 내가 체감하게 된 현정 자신의 감정이었다. 끝내 그녀가 홀로 남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래서 나는 그녀가 홀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리고 남겨지는 것이 나라는 사실에 사심 없이 기뻤다.


낯설다느니 다르다느니, 특이하다느니. 그런 말을 나를 규정짓는 특성에 포함 시키고부터 나는 남과 다르다는 말을 듣는 것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고백하건대, 어떤 경우는 그 다름을 기껍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타인으로부터의 거부반응을 상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눈물, 상처를 딛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믿고 살던 언제쯤. 나는 나를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정이 그런 사람이었다.


긴 연애의 끝을 이별로 마무리했을 때 내 주위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눈물과 상처 속에 빛나는 청춘을 부대꼈던 그들의 우정이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은 어쩌면 연애의 종말보다도 더 아픈 일이었다. 10년 동안의 20대가 끝이 났을 때 내 곁에는 딱 세 명의 친구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삶이 다시 한번 내게 여행을 허락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풍경, 가장 절실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번번이 쉽지 않았던 관계에 지쳐있을 때 나타난 현정은 내게 마지막 기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설명하려 애쓰고 내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 힘썼다. 그리고 남편과 연락이 닿을 때면 그런 나의 서투른 몸짓을 스스로 조롱하며 울었다. 그 고백의 순간조차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었다. 나를 나로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지독한 욕망은 독기를 뿜어냈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느꼈으니 내 것이 되었다 믿었던 배웅의 외로움은 마침내 현정이 떠나는 것으로 완벽히 귀결되었다. 비로소 나는 나의 외로움으로 슬퍼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떠나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던 내가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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