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32) - This is Pai

This is Pai(1)

by 서화림

보람찬 여정이라 답하지도 못하면서 다시 간다니, 빠이에 꿀이라도 발라놨냐던 옆집 여자의 빈정거림을 들었을 때는 심지어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런 목소리로 내게서 빠이를 앗아가려 하지 마. 딱 그런 심정으로 경계를 세웠다.


계획 없이 왔다, 하는 부분이 빠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한정된 시간 속의 무계획일 뿐이었지 기약 없이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떠나야 할 날짜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그렇다고 착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현정이 떠나가는 것으로 ‘모두’를 떠나 보내고 나는 수다 모임 일정에 맞춰 치앙마이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자 곧장 빠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내 혼자 있었다. 간혹 외출할 때 마주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집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 외에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틀어박혀 있다는 점에서 치앙마이에서의 생활과 다른 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머물러 있었다. 아직.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느낌이 주는 바를 따르고 싶었다.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어느 날 패션 잡지에서 모델의 손에서나 쥐여 있을 법한 사각의 트렁크를 끌고 나타난 한은 단연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 예쁜 가방을 끌고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나타난 그녀를 주시한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다. 하얀 피부와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을 쳐다보며 아마도 저 사람은 일본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그녀가 내 옆 침대를 쓰게 될 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룸메이트. 내게 룸메이트가 왜 필요했을까?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계절이 아니니 숙박료가 비싸지도 않은 때이다. 장기로 머무를 것이 아니기에 구태여 저렴한 방을 찾을 이유도 없었고 설사 그럴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시설이나 청결도 같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몇 가지 조건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일정을 줄이는 쪽을 선택했을 거다. 밤이 되어야 비로소 생생해지는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 수면을 취하는 누군가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곁에 누군가를 둘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련의 제의를 받아들였던 것은 그녀에게 따로 일행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담이 덜한 일이었다. 꼭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는 없다, 하는 부분은 나를 의무에서 해방해 주었다. 뒷받침할 경험이 없었기에 어떤 결말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좋은 룸메이트였다. 그러나 한을 만났을 때,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벌써 외롭다 푸념하던 그녀에게 방을 함께 쓰자고 먼저 제안했던 것은 련과의 관계에서 얻은 좋은 인상보다는 성급하게 내려버린 일반화의 오류 같은 것이었다. 거기엔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위험부담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스무 살이 지나 서른이 될 때까지 한 번에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문 적이 없을 정도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던 한의 말은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기에 그녀의 여행이 너무 서툴렀고 타인에게 기대려는 몸짓은 지나치게 명확했던 탓이다. 무심결에 련과 같은 관계를 기대하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모든 것을 함께 하길 바라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관계는 쉬이 피로를 주었다.


사실 그녀는,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우리 하니, 너무 사랑해’ ‘우리 하니, 오늘은 내가 맛난 거 먹여줘야지’ ‘우리 하니, 내가 좋은 구경 많이 시켜줄게’ 류의 자기애는 그것에 담긴 진심이 듣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건강을 위해 절주하며, 아침을 맛있게 먹기 위해 야식은 먹지 않는다는 그녀의 ‘건전한’ 자기 사랑. 그렇게 당당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나는 아직 배우지 못했기에 어쩌면 나는 그녀가 멋져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거부감도 컸다.


그런 그녀를 ‘처음 보게 된 새로운 종류의 인간군상’ 정도로 생각하고 다만 지켜봐야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그녀의 건전함에 휘둘리기 시작했고, 곧 나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녀에게 맞춰 아침 일찍 일어나려 버둥대고 깔깔한 입으로 식사를 밀어 넣었다. 왠지 모를 압박감에 그 좋아하는 군것질마저 삼가기 시작했다. 언제든 말 허리를 툭툭 잘라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를 듣지 않기 위해 말수가 줄었다. 가장 나쁜 일은, 필사적인 노력에도 누구 하나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곧 ‘함께’인 것이 싫어졌다. 단지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다. 먼저 손 내민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편은 계속됐지만 결국은 ‘며칠 남지 않았으니’하는 정도로 스스로와 타협을 보고 말았다.

대체, 왜 룸메이트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정말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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