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33) - This is Pai

This is Pai(2)

by 서화림


빠이 온천도, 빠이 캐년도. 이차대전 다리도 건너고 싶어요. 이러저러한 바람을 늘어놓는 내게 한 여행자가 말했다. 오토바이 타세요? 내가 고개를 젓자 그는 열성적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또 몇 번째 회자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내가 아는 사람은 자전거로도 다녀왔다던데요, 를 꺼낸다. 그는 야시장에서 빠이찬까지도 오토바이 없이 이동하는 것이 지나치게 멀다고 생각할 만큼 이곳의 오토바이 라이프에 취해있다. 걷다가 사람이 퍼지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할 수 있지만, 자전거까지 함께면 정말 쉽지 않다는 그의 걱정은 이미 실패를 전제하고 있다.

나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회의적이었으면서도 막상 타인에게서 너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심사가 편치 않은 일이었다. 당신 못한다고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건 아녜요, 무심결에 튀어나오려는 퉁방울 같은 소리를 가까스로 삼켰다. 그는 그저, 멋모르는 초보 여행자를 걱정하는 숙련되고 상냥한 여행자일 뿐이다. 그는 요즘 세상에선 흔치 않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걱정할 줄 아는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되도록 그가 마음 상하지 않게 그렇게 험한 길인 줄 몰랐다느니, 초보 여행자의 객기였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선배 여행자 앞에 겸손을 가장한다. 그때 그의 다른 일행이 그에게 말한다. 냅둬 봐.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슬쩍 기분이 상했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데 그가 말을 거는 대상은 내가 아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지금 달리고 있는 거리부터 빠이 시내 접어들 때까지 길 잘 봐두세요. 나중에 빠이 캐년에서 올 때 거슬러 와야 할 테니까요. 그 말에 숨겨진 속내가 없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마땅한 답을 내놓기 어려웠기에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엔진이 달린 바퀴 없이는 그 거리를 움직일 수 없겠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을 때 불쾌감은 두 배쯤 커져 있었다.


빠이에 왔을 때 얼굴이나마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이 빠이를 떠나고 나도 치앙마이로 돌아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다시 빠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거리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의 얼굴이 더는 낯설지만은 않을 때까지 나는 여전히 온천과 캐년, 중국인마을 등등을 계획만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흥정해야 할까, 동네 여행사에 데일리 투어를 신청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볼까. 궁리는 많지만 어느 것 하나 마뜩지가 않다.


련이 떠나기 전날, 빠이 고등학교의 운동장에서 우리는 오토바이 연습을 했었다. 오토바이를 배운 지 이틀 된 련이 선생님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의 구경 속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오토바이를 타는 것에 익숙한 저들은 대체 왜 저 다 큰 여자가 고작 오토바이 하나에 저렇게나 쩔쩔매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40km 이상 속도를 내는 것이 여전히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평지에서 정도라면 탈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련의 응원과 칭찬 덕분이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던 중 눈앞에서 사고가 나는 것을 목격해버리고 말았다. 사고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났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라서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안위를 확인하곤 제 갈 길을 갔지만 분명 며칠은 까진 곳은 꽤 쓰라릴 것이고 어딘가 쑤시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작은 사고는 한껏 고취되어 있던 어떤 여자의 자신감을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다. 결국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도 교통사고로 추정되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여 나를 기죽게 했다.


새 룸메이트 한과 커피 인 러브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오후 한 시의 햇볕을 받으며 걷는 오르막길은 꽤 힘들었다. 인도가 없어 대로변을 걸으니 과속으로 지나다니는 차가 일으키는 먼지는 고스란히 입속으로 들어오고 티끌 때문에 연신 눈을 깜빡여 눈물을 짜내야 한다. 공사 중인 게스트하우스 앞에 세워진 커다란 온도계는 31도밖에 안 되는데 햇볕은 왜 이렇게 뜨거운지. 몇 번이나 계속되는 후회를 반복하자 오기를 부리던 그 날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마침내 커피 인 러브에 도착했을 때 나는 히치하이크라도 해 어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기대를 안고 찾아간 커피 인 러브조차 사진찍기 좋은 장소 이상으로 보기 어려웠다. 사람의 손이 닿은 정원은 멀찍이서 보기에는 좋아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간다면 피어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시든 꽃들을 볼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꽃인 코스모스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쁘지만 뭉텅이로 시들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사람의 욕심에 기후에도 맞지 않은 곳에 심겨져 마침내 더위에 시드는 것으로 희생되는 귀한 것을 보는 것 같아 그만 언짢아지고 마는 것이다. 이곳 빠이는 사람 손이 닿지 않아도 멋질 수 있는 드문 곳인데 왜 굳이 뭔가를 하려 드는 걸까.


한이 엽서를 쓰는 것을 기다려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멀게만 느껴졌던 초행과는 달리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어 금방 익숙한 거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너무 지쳐버린 두 여자는 곧장 숙소로 들어와 몸을 식힌다. 샤워기의 찬물이 닿았을 때 나는 벌에 쏘였다고 생각했다. 어깨를 봐준 룸메이트에 의해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짐을 줄이려 알로에 젤을 빼놓고 온 것이 아쉬웠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똑바로 누워 잠을 잘 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침대에 모로 누워 나는 내내 계획했다. 빠이 캐년, 중국인 마을, 온천...... 그거면 마침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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