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디짜이(34) - This is Pai

This is Pai(3)

by 서화림

Do not lean on someone who you love.(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지 마세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문 앞에 서면 노골적으로 ‘기대지 마시오’라며 사람을 밀어내는 그 스티커들을 찾게 된다. 단지 안전을 강조하려는 조처 앞에서 뚱한 시선으로 그것을 쳐다보며 드는 생각이라곤 우리가 너무 쉽게 상대를 거절하며 또 그것을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피해망상적 감정이입뿐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할 때는 뭔가 중요한 경고를 놓쳐 사고를 유발하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곤 하는 것이다.


그 황량한 빠이 캐년에서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엉거주춤 디딘 걸음 그대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바라본 단호한, 혹은 짜증을 담은 얼굴들은 예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동행들의 입장은 그랬다. 거긴 위험해. 가지마. 고작 그 좁은 길 끝까지 걸어본다 해서 큰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은데 걱정이 과한 것 같다. 심지어 떨어진다 해도 다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좋아, 그만가지. 명백한 가식으로 얼굴을 감싸고 다시 정면을 향했을 때 누구도 바라볼 수 없었을 내 본심은 그 감정을 감춰내지 못했다. 단지 그 아스라한 등성이의 끝에 서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짜증치고는 과한 감정이 아니었던가 싶었지만, 그 자리에 서서야 비로소 거부해왔던 시간 속의 외로움, 마땅히 가졌어야 할 그리움 같은 나에게만 의미 있을 감정들을 껴안게 된 내게 그들의 반대는 반대 이상의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대만에서 왔어요. 이곳은 아주 풍경이 좋으네요. 오늘은 중국인 마을에 가려고 했는데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나같이 나이 든 사람에게 빠이 시내는 별로 재미가 없어요. 나는 근처 온천이 나오는 숙소에 머물며 온천하고 해먹에 누워 여름을 느끼고 있어요. 요즘 대만은 약간 쌀쌀하거든요.”


“빠이는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이곳을 알 기회가 생겼죠. 주부로 사는 게 바빠 제대로 여행 다닐 여유가 없는 내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오기로 했었는데 일정을 며칠 남겨두고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해서 결국 혼자 오게 되었네요. 조금 더 기다렸다 친구의 형편이 나아지면 함께 와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두 번 와도 괜찮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되네요. 사실, 내 친구는 이런 여행을 바라지는 않았을 테니 다음 여행 계획을 함께 짜게 될 때는 친구의 의견을 따르면 될 것도 같군요.”


“남편은 사업가예요. 내 부모님은 경제적 어려움은 없지만 시간적 제한이 많이 따르는 상대를 내게 짝지어 줬죠.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외로움과 동침했지요. 마침내 20년이 흘렀을 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어요. 외로움을 친구 삼아 혼자가 되어야 할지 외로움을 친구 삼아 혼자가 되어야 할지 결정을 해야만 했죠.”


“무슨 말이냐면, 그와 살아도 외롭고 그와 떨어져 살아도 외로울 테니 굳이 함께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이에요. 내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수많은 갈등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아,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럽네요. 나는 자주 그에게 화내고 우리는 자주 다퉜지만 그것조차도 애정이 있어 가능한 게 아니겠어요? 너무 오래 화를 냈더니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분노와 원망에만 몸을 싣고 살아왔던 거예요.”


“마음을 정하기 위해 홀로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그 모든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죠. 기쁘고, 행복했어요. 긴 세월 그 많은 다툼 속에서도 아직 애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해내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요? 그것뿐 아니에요. 나는 그 여행을 통해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는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떠나가던 역할에만 익숙하던 그도 내가 찾은 행복을 통해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더군요. 우리는 아주 오래 부부로 살아왔지만 사실 함께 나눴던 것은 많지 않았거든요. 서로의 행복이 나의 기쁨은 될 수 있겠지만 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우리는 너무 오래 걸렸지요.”


“나는 당신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몰라요. 왜 그런 표정으로 저 너머를 바라보는지, 왜 당신 일행과 떨어져 걷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낯설지 않아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필사적으로 그에게서 자신을 분리해 내세요. 자식을 키우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여자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인간인 나의 외로움을 보듬어줄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드네요.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그들의 세상으로 떠나가죠. 그때 그들을 놔주지 못하는 부모란 애들의 장애물에 불과해요. 그 애들은 조금의 인내심도 당신에게 나눠주지 않을 거예요. 그때 당신은 두 번째로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원래 당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더불어 아주 큰 구멍을 남기게 될 테죠. 당신만의 행복을 가지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자식 앞에선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들 테지만, 당신 어머니도 아주 오래전에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을 거예요. 이렇게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나 있는 당신을 보니 일찍부터 삶을 대하는 방법을 찾은 당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또 그 뒤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당신 어머니의 그림자에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아마 내가 두 가지 모두의 삶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거겠죠.”


말끄러미 쳐다보는 그 시선을 보아 넘길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똑바로 걷고 있었고 목적지는 그녀의 옆자리였다. 멀리서도 보였던 것은 마주했다 느꼈던 눈빛밖에 없었기에 가까이 갔을 때야 상대가 중년의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옆자리에 서서 작기 때문에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 소박한 협곡의 모습을 나란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행복을 찾은 경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름을 나누지 않고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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