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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

취향존중 김밥 만드는 여자

딸애가 전날 새벽에 일어나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열은 없었다. 아마도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멀미 때문인 듯하다.

딸애는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서 엄청나게 게워내고, 겨우 잠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수건을 머리에 대주고 나도 새벽에 잠들었다.


딸애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흔들어 깨운다. 배고프다며...

괜찮은지 묻는 나의 말에 본인은 괜찮으니깐 걱정 말라며 빨리 밥을 주라 한다.

몇 시간 전에 게워냈던 그녀가 믿기지 않지만, 그래도 먹겠다니 기특해서 메뉴를 추천했다.

1. 베이컨 계란 볶음밥

2. 프렌치토스트와 사과 당근주스

3. 생선구이


그녀는 모든 메뉴가 싫다고 했다.

"김밥 먹을래? 1층에 김밥집 김밥"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은 일요일이다. 김밥집 휴무이므로, 김밥은 안될 것 같았다.

배달시키면 또 한참 걸릴 텐데...

"혹시 20분만 기다릴 수 있어? 엄마가 김밥 말아줄게~~"

그녀가 인자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 크게 고개를 흔든다.


그녀는 야채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김밥에 계란하고 햄만 넣는다. 예전에 그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야채를 조금씩 시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다.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

"어마마! 너 취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좋아하는 거!  싫은 거 안 하는 거"

9살 그녀의 당찬 답변에 압도되어, 김밥에 야채를 모두 빼고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재료가 별로 안 들어가기 때문에 김밥은 20분이면 만들 수 있다.

급하게 냉동해 놓은 밥을 해동하면서, 계란 지단을 부치고, 소시지를 잘라 물에 데쳤다.

그리고 밥에 소금 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 계란은 두껍게 만들지 말고 얇게 썰어줘!"

"그러니까, 얇게 채 썰어서 많이 넣어달라는 거지?!"

"응! 그렇게 해줘!"


야무지고 정확한 그녀의 지시에 나의 손길이 빨라졌다.

간단하게 두줄 정만 만들려고 했으나, 6줄을 만들었다. 역시 내가 제일 힘든 건 조금만 만드는 거다.

완성된 김밥 한 줄을 먼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한 접시를 비운 그녀에게서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따로 없지만, 오물오물 조물조물 김밥도 야무지게 잘 먹는 그녀는 참 사랑스럽다.


나머지 김밥은 남편과 아들 몫으로 남겨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각자 먹고 싶은 게 다르기 때문에, 여분의 간식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남편은 얇은 김밥을 좋아하므로, 최대한 얇게 썰고, 아들은 통째로 먹는 걸 좋아하므로, 그대로 둔다.

내가 아니면 누가 또 우리 가족의 취향을 맞출 수 있갰나 생각한다.

내가 보내는 언제나 든든한 위로는 취향 존중 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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