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로 내리사랑을 느끼는 여자
아들은 물을 엄청 많이 마신다. 정확히는 그냥 물 말고 보리차를 마신다.
학교에 보리차를 가지고 다닌다. 보통 물병용량이 500ML인데, 아들은 2L짜리 큰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여름에는 더우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겨울에도 그 물병을 가지고 다녔다. 물이 너무 차가우니 안 되겠다 싶어서, 대용량 보온병을 사주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큰 물병에 보리차를 먹으니, 일주일 두세 번은 보리차를 끓인다.
보리는 아빠가 시장에서 사다 주시는데, 친정 근처 오일장에서 갓 볶은 구수한 보리를 사다주신다.
보리 사장님이 나오 실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아빠가 허탕을 치는 날도 있다.
아빠의 그런 수고를 알기 때문에, 보리차를 여러 번 진하게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인다.
우리 집 주전자가 5L 용량이어서, 보통 두 번에 나눠서 끓인다. 그러면 보리가 흐물흐물 해진다.
보리를 한 톨도 허투루 쓰지 않고, 끝까지 축출하겠다는 나의 결연한 의지인 셈이다.
아빠는 보리차를 사다 주실 때, 보리차만 사는 것이 아니라, 결명자도 함께 사다 주시는데, 이번에는 옥수수도 함께 사다 주셨다. 보리차와 옥수수 차는 물대신 마실 수 있지만, 결명자차는 매일 마시면 이뇨작용 때문에 물대신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보리차를 끓일 때 티스푼으로 한 두 숟가락씩만 넣는다.
결명자차는 맛이 구수하여, 넣고 안 넣고의 차이가 크다.
오늘은 아빠가 사다 주신, 보리와 결명자 그리고 옥수수의 콜라보로, 보리차를 끓였다.
옥수수와 결명자의 조합이 엄청 구수하고, 뜨끈하게 마시니, 몸 안에 따스함이 감돈다.
물통에 넣기 전에, 체에 걸려서 혹시 모를 찌꺼기를 거르고,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는다.
2L 가득 4병이나 된다. 물병 가득한 보리차를 보니, 뿌듯하다.
이것도 3일이면 없어지지만, 아빠가 사다주시고, 아들이 좋아하니, 안 끓일 수가 없다.
아빠는 손주 생각에 오일장을 왔다가 하면서 사다주시고, 아들은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맛있는 보리차를 매일 학교 들고 간다. 할아버지가 너를 위해서 사다 주신 거야라고 말하니, 아들은 웃으면서 물병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 마음을 아는지, 거의 매일 남김없이 먹고 오는 아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소소하고 별거 아니고, 저렴한 보리차이지만, 이 작은 보리차가 할아버지에서 손주에게로 내리사랑이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추억거리가 되길 바라 본다.
'그때, 할아버지가 장에서 사다주시던 보리차 맛있게 먹었는데..'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