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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할머니 치매 셨을지도 몰라

처음 본 할머니가 계속 생각난 여자 

토요일 아침에, 동네 야채가게를 가는 길이였다. 딸아이와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노오란 참외가 몇 개 들어 있는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쥔 할머니께서 길을 물으셨다.

"ㅇㅇ초등학교 가려면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지요?"

"그런 초등학교는 이 근처에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어느동에 있는 건가요?"

"내가 여기 장이 선다고 해서 왔다가...ㅇㅇ동 가려면 어떻게 해요?"

"아! 여기서는 두 정거장 더 가셔야 하는데, 여기서 정류장까지 좀 걸어야 해요"

"혹시 버스 몇 번 타고 오셨어요?"

"22번 버스 타고 왔는데, 건너서 타려고 했더니 여기가 아니라네요"

"그러면 할머니 택시 타고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신호등 건너시면 바로 택시 정류장이에요"


나는 택시를 태워드리고 싶었지만, 재촉하는 딸아이 때문에, 안내만 해드리고 신호등을 건넜다.

야채가게에서 물건을 사는데, 할머니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택시를 타시지 않을 것 같았고, 어딘가 모르게 당황한 듯한 얼굴이 보니,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치매 초기에는 어색하긴 하지만,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화가 깊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다음 단계로 발전하지도 못한다. 언뜻 보면 횡성 수설 한다고 볼 수도 있고, 성격 급한 어르신들 말 잘 안 통할 때 느낌이 나기도 한다. 


야채가게를 나오면서 딸아이에게 말했다.

"아까 그 할머니 택시 타고 잘 가셨겠지?"

"그럼! 잘 가셨겠지. 어른인데 잘 찾아가셨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할머니와 헤어졌던 신호등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거기 계속 있으신 게 아닌가?! 나는 놀라서 할머니께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아직 택시 못 잡으셨어요?"

"아니 그게 택시가 없더라고요. 지나가는 택시는 세워주지도 않고..."

"할머니 그러면 이쪽으로 같이 가세요 제가 택시 태워드릴게요"

"아유 고마워요."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태워드릴게 아니라, 112로 전화해서 할머니께 도움을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행선지를 다시 한번 여쭈었다.

"그런데, 할머니 아까 어느 초등학교 근처로 가신다고 하셨죠?"

"ㅇㅇ초등학교요. 그 근처가 집이에요"

서둘러ㅇㅇ초등학교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 근처에 ㅇㅇ초등학교는 없었고, 인천에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가 검색이 되었다. 나는 할머니께 재차 ㅇㅇ초등학교가 맞는지 여쭈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한마디를 하셨다.

"아마 ㅁㅁ초등학교 일거예요. 어른들은 헷갈릴 수 있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바로 말씀하셨다.

"아우 맞아요 ㅁㅁ초등학교 왜 맨날 잊어버리나 몰라! 정신이 없어가지고 그랬네"

여기서 나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할머니가 본인의 집을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112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과잉 반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는 딸아이도 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어서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할머니께서 ㅁㅁ초등학교 가신데요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 ㅁㅁ 초등학교 근처가 집 맞으신 거죠?"

"아우 맞아요. 그 근처만 가면 ㅇㅇ아파트  거기가 집이에요. 애기엄마 고마워요!"

그렇게 택시는 떠났다.


내가 계속 뒤를 돌아보자,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할머니 집 주소도 아시니까 잘 찾아가실 거야"

"근데, 어쩌면 할머니가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러면 경찰 아저씨께 전화했어야 맞는 거 같은데... 엄마가 대응을 잘 못 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만약 할머니가 치매가 맞다면, 지금 가장 혼란스러울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찾고 있을 가족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택시가 지난간 길을 보며, 할머니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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