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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 해수욕장에서 울다

제주여행 3일 차, 협재 해수욕장에 갔다.

전날 금능 해수욕장에서 해루질을 하고, 오늘은 협재 해수 욕장을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좋은 평상 자리를 맡고, 9시도 안 되는 시간에 해수 욕장에 들어갔다.

늦잠을 자고 싶었던 아이들은 오는 동안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막상 해수욕장에 물이 차있는 걸 보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었다.

장장 7시간을 바닷속에 있었다. 

파도를 타며, 공을 던지며, 튜브를 타며...

잠깐 점심을 먹으로 나온 사이에 그가 말한다. 

"엄마! 여기 우리 작년에 왔었던데 맞지?"

"응! 그때 이모랑 놀러 왔었지. 협재는 사람이 많아서 금능으로 왔지"

"그때! 왜 아빠는 못 왔지?!"

"그때, 할아버지 병원 입원하시느라, 아빠가 병원에서 할아버지 병간호 했었지.."

한참 파도타기로 즐거웠던 그때, 그의 질문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이 났다.


아버님은 올해 1월에 돌아가셨다.

전립선암을 앓고 계셨던 아버님은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하셨었다.

항암치료는 몸이 버티시지 못해서, 중단했고, 3개월에 한 번씩 입원해서 신장에 연결한 관을 교체하는 시술 해야 했다. 암세포가 전립선을 막아서 소변을  보기가 어려워하는 시술이다.

그리고 입원하기 전에, 코로나 검사는 필수이다.

아흔이 다 되어 가는 노인이 정기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면서 관리를 했었다.

폐가 좋지 않으신 아버님께서는 백신도 못 맞으셨기에, 코로나 시기에는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외출도 잘 안 하셨다. 집안 식구 모두가 아버님의 암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모두가 코로나 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평상시 아프시면 나오는 증상이었기에 아버님이 코로나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

아버님은 음압 병동에서 2주 동안 계셨다. 너무 늦게 와서, 손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병원에 실려가시기 전에 내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는데, 나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신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때 임종 면회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직계 가족들만 면회를 해주는 건데, 

완전 면회는 아니고, 병동밖에 데스크에서 화면으로만 보는 면회라고 했다.

남편과 시누들이 아버님을 화면으로 만났다. 

격리가 해제되고, 나는 매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저는 직계가족은 아니고, 며느리인데 한 번만 면회 허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모시고 살았어요. 그냥 목소리만 들려 드리면 안 될까요?..

겁이 원체 많으셔셔, 무서워하실 텐데...."

전화기 너머로 나이 어린 간호사가 나를 위로한다.

"지금은 상태가 안정적이고, 일반 병실로 옮기실 때, 기회가 있을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전화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네 그러면 곧 옮기 실 수 있다는 거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아버님은 끝내 병실을 옮기지 못하셨다.

결국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님을 뵈러 갈 수 있었다.

음압 병실 안쪽에 병실 사이 작은 복도에 패킹이 되어 있는 아버님을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데스크로 가는 길 복도에 있는 간이침대를 보았는데, 그게 아버님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패킹이라고 했다. 무슨 짐짝처럼 패킹이라니......

코로나 환자로 돌아가셨기에 그 비닐은 벗기면 안 된다고 했다.

장례도 그 상태로 하고, 화장도 그 채로 해야 했다.

입관식을 할 때, 몇몇 가족들은 패킹한 아버님을 보고 실신했다.

만질 수도 없었다. 

코로나 환자라 입관 식도 10분을 넘지 못하고, 경황이 없어 잘 가시라고 그동안 주신 사랑 잊지 않겠다고 감사했다고 인사말도 못했다. 


불현듯 아버님이 생각났던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지금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돌아가 시 전에 문득, 아버님이 신랑에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아들아! 너 낳고 진짜 기뻤다."

그러면서,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셨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한데, 아버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버님만 안 계신다. 

그리고 틈틈이 아버님을 생각하기로 한다. 

함께 즐거웠던 시간들, 함께 슬펐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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