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생과 사가 그 한숨에 있었다
4년 전 이 마음 때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0년 넘게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2년 정도를 누워계셨다. 치매로 인지기능은 완전히 잃으셨던 어머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모든 것을 케어했다. 식사도 챙기고, 목욕도 챙기고, 약도 챙겼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실까를 항시 고민했지만, 어머니와 애틋하셨던 아버님은 절대로 그것만은 안된다고 하셨다. 내다 버리는 것 같아서 안된다고 하셨다. 또, 요양병원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컸던 것 같다. 뇌혈관성 치매이신 어머니는 늘 각성 상태셨다. 몸을 움직 일 수 없으시고, 표현을 하실 수가 없었기에, 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셨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의사 표시를 하시는 순간은 입을 다무시는 것이었다. 밥과 약을 모두 거부하시고 최선을 다해 입을 다무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남편은 늘
“이건 정말 엄마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약을 드시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주무 실 수가 없고, 약을 드시려면 식사를 하셔야 하기에, 억지로 식사와 약을 챙겼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겪는 문제 중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님이 정기적으로 처방받는 약들은 어머니가 병원에 가야지만 처방을 받을 수 있지만, 어머님을 모시고 가려면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대리로 병원에 가서 어머니의 상태를 말하고 약을 타왔다. 가정간호를 신청해서 2주에 한 번은 간호사님이 방문하셔서 영양제와 상태를 체크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 여러 가지 증상을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혹시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해진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입속에 세균이 사는데, 우리 같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양치로 뱉어 내기도 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세균이 폐 속까지 들어가는 일은 없지만, 어머니처럼 누워계시는 분들은 가끔 입속에 있는 세균이 폐 속으로 들어가서 패혈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심해진 듯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러다가 큰일 날 것 같으니, 어머니를 빨리 병원에 모시자고...
남편은 아버님께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하루빨리 병원에 모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요양병원에 가려면 현재 진료받고 있는 병원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반드시 어머니가 병원에 가셔야 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려면 구급차가 필요했다. 사설 구급차를 예약하고, 성모병원에 들러서 진단서를 발행받고, 요양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진단서도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당 선생님 진료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하고 집에서 기다렸다. 어머니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시는 것 같아 요양사 선생님과 자주 자세를 바꿔 가래가 나오도록 하고, 물도 수시로 드리면서 추이를 살폈다. 다행히 어머니는 밥과 물을 잘 드시는 편이었다. 예약한 구급차가 오기로 한날 이상하게 잠을 한순간도 자지 못했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수시로 상태를 확인했다.
아침 일찍 구급차가 왔는데, 기사님께서 어머니를 보시고는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일단 구급차에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상황을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치매상태 이시고, 현재 어떤 약을 복용하고 계시고, 가래가 끓은 지는 며칠 되었고, 열이 높지는 안 않았고, 어제 점심까지 드셨으며, 진단서를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오던 중이었다는 사실까지 말했다. 담당의는 지금 바로 기관 절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연명치료를 하겠냐고 물었다. 순간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건 엄마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말...
그 부분은 밖에 있는 남편과 상의하겠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일단 연명치료를 위한 기관 삽관을 제외한 모든 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의사는 알았다고 했다. 서둘러 가족들에게 알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물론 언젠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을 알았고, 어머니도 이 삶이 지칠 대로 지치셨다는 것도 알았다. 또, 어머니를 케어하면서 나도 지칠 대로 지쳤기에 죽음을 생각 안 해 본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갑자기는 아니었다.
시누이들과 번갈아 가면서 병원을 지켰다. 막내 시누이가 주말 동안 병간호를 했는데, 수치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래를 제거하고 이뇨제와 여러 가지 약물을 투입해서 어머니의 상태는 안정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대하기로 한 날 새벽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지금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본능적으로 마지막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자는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나 아버님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동 입구에 들어서는데, 시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병실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시누이들과 함께 엄마를 외치면서 울고 있었다. 맥박과 산소포화도 수치를 알리는 기계가 요동치고 있었다. 갑자기 간호사들이 뛰어들어왔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갔다. 수치가 계속 내려가고, 어머니가 쓴 산소마스크에서 가쁜 호흡이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울고 있었다. 아버님도 어머니 이름을 외치며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어머니가 아버님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시누이들은 `엄마 가지 마`를 계속 외쳤고 남편과 나는 서로를 의지 한채 울었다. 어머니는 힘들게 눈을 돌려 자식들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산소호흡기의 소리가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기계가 멈추었지만, 어머니는 힘겹게 호흡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침대를 둘러싸고 어머니의 팔과 다리 얼굴을 만지며 오열했다. 각자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나는 어머니 얼굴에 볼을 대며, 말했다.
"다음 생에는 아프지 마세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완전히 숨을 멈추셨다. 방금 전까지 힘겨웠던 호흡을 하며 살아계셨는데, 호흡이 멈춘 그 찰나의 순간에 어머니는 영면하셨다. 그 짧은 한숨이 생과 사를 갈랐다.
누구보다 가족과 그림을 사랑했고, 지난하고 힘들었던 투병 생활 중에서도 아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만의 여정을 마무리하셨다.
그 짧은 한 숨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