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아버지 기일을 맞은 여자
세부에서 한 달 살기를 끝내고 돌아온 다다음날, 시아버님 기일이었다.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17년 며느리 생활이 끝났다.
우리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아프셨다. 시어머니는 치매로 오래 병상에 누워계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시아버님은 지병이 있으셨는데, 갑자기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아무도 아버님이 코로나로 돌아가시라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것도 코로나 종식 선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죽음으로 황망함과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그리워했고, 우리 부부도 아버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때도,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버님의 죽음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방문을 열면 아버님께서 의자에 앉아서, 왔어? 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 부부는 말하지 않았지만, 제사에 정성을 들였다.
긴 여행으로 피곤했지만, 제사장을 보는 것부터 함께 했다.
평상시에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과일, 전, 고기, 산자 등등 푸짐하게 준비했다.
거기에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초코바, 콜라와 같은 군것질 거리도 함께 샀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고,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아버님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장 봐온 재료들을 정리하고, 음식들을 하나씩 만들었다.
아버님은 삼색 나물 중에서 도라지나물을 좋아하셨다. 치아가 좋지 못하셔서 도라지를 과일칼로 아주 잘게 잘라서 볶았었는데, 이번에도 아버님을 생각하며 최대한 잘게 잘랐다.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또, 아버님께서는 전 중에서 녹두 빈대떡을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님이 평소 좋아하셨던 대로 삼겹살을 듬뿍 썰어서 넣었다. 고기반 녹두반이 되도록 했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기 탕국도 양지와 사태를 아주 듬뿍 넣어 오랫동안 푹 끓였다. 고기 육수가 아주 진하게 올라왔다.
평소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그 비주얼이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갈 즈음에 시누들이 왔다. 도와줄 거 없냐는 시누들의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제사라는 것이 남은 사람들 마음 편하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더 드리고 싶은 마음에 하는 일인 것 같다.
다 같이 모여서, 절을 하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아버님을 생각했다.
누구는 하늘에서 어머님과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하고,
누구는 우리 보고 싶어 하시는지 궁금해하고,
누구는 우리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렇게 첫 기일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