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을 추억하다

내가 구독하는 영화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2003년은 한국영화계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는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영화감독들의 신작 혹은 초기작이 그 해에 개봉해 전성기를 이뤄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보이> <황산벌> <실미도> 이렇게 대형 히트작들이 연이여 터져 나왔던 해가 2003년 이었다고 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절이라더니 대표 영화를 보자마자, 맞네 하고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20년 전에 저 영화들을 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 살인의 추억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당시 나는 친구와 종로에서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었다. 지금이야 CGV처럼 멀티 플렉스 영화관들이 독점하다시피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메카 하면, 종로였다. 지금은 다 없어져서 추억 속에만 남아 있지만,

종로 하면 떠오르는 영화관은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이었다. 친구와 내가 만나 곳은 서울 극장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서울극장 앞에 문어구이 파는 아줌마가 제일 맛있었기 때문이다. 또, 전형적인 ENFP인 나와 친구는 대충 영화 시간만 알아보고, 그 시간즈음에 만났다. 지금이야 미리 다 예매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미리 가서 결제하는 시스템이었고,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를 보러면, 일찍 대기를 타야 했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 영화 개봉 일주일 되는 날이라서, 전회 전석 매진이 되었다. 난 별로 실망하지는 않았는데, 친구가 또 시간 내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의 아저씨가 검은 바람막이 쟈켓을 멋스럽게 휘날리며,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살인의 추억 암표 있어요! 한 장에 만원!"

맞다! 그때까지만 해도 암표가 팔았다. 순간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내기 억이 맞다면 그때 영화표가 6천 원 정도였다. 만원이면 영화표에 커피에 문어구이까지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차에,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지금 암표도 없어요 지금 안 들어가면 나중에는 아예 못 봐!"

아저씨의 클로징 멘트로 나와 친구는 홀리듯이 표값을 계산하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매표원이 이상하게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영화관이 2층이 아니라, 공연장처럼 2층 좌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더욱 황당한 것은 좌석이 아예 없는 층계 같은 곳에 무슨 목욕탕 의자 같은 의자에 앉는 자리였다. 친구와 나는 당황해서 웃음이 나왔다. 의자가 너무 웃기고, 이런 자리에서 보겠다고 암표까지 구입했으니, 말이다. 이거 나가서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데, 영화가 시작했다. 어두워서 뭐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목욕탕 의자에도 나름의 서열이 존재했다.바람막이 재킷 아저씨가 그래도 양심은 있었나 보다. 지금 일어서면 뒤에서 완전 뭐라고 할 것 같아,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앉았다.


잠깐의 해프닝이 진정되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시작부터 강렬한 도입부에 나는 완전히 몰입되었다. 어두운 듯 우울한 화면과, 실제를 방불케 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80년대의 철저한 고증이 나를 완전 사로잡았다. 범인을 잡지 못해, 살인을 추억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패배가 대단히 흡입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품격 있는 배우 박해일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가 처음 등장했던, 취조실의 모습이 생생하다. 순수한 듯 하지만 무표정하고 음산한 얼굴에,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던 20대의 박해일배우의 모습이 그대로 내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다.


이렇게 기억이 또렷한데, 이 영화가 벌써 20년 전의 영화라니... 시간이란 참 야속하다. 영화포스터 한컷으로 잠시 시간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든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4K 블루레이로 발매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재개봉할 때, 다시 가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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