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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ul 29. 2019

고양이의 쪽지

여전히 길에서 고양이를 자주 마주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여전히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제가 사는 동네에 고양이들이 많이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왠지 서글플 것 같네요) 

저는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을 즐깁니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관심이 생기는 카페도 있지만 지인의 추천이나 SNS를 통해 알게 됩니다.

한 번은 “정말 이곳은 가봐야겠군.” 하고 

카페 이름을 메모해 두지 않고 있다가 새하얗게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비루한 기억력에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애써 기억하지 않기로 하고 포기해 버렸지요. 

아무래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건 안 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늘 같은 길목에서 높은 확률로 만나는 길고양이가 있는데 그날도 녀석을 만났습니다. 

대담하게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것입니다.

 

그림. 홍슬기

그것을 보고는 녀석이 만약에 인간이었다면 굉장히 기세가 좋은 인간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 날따라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는 마치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소리 내 울며 주도를 했습니다. 

고양이가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영문을 모를 일이긴 했습니다만 몇 걸음 가지 않아 캣맘이 녀석에게 밥을 주기적으로 주고 있는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 녀석 길에서 사는데도 이렇게 몸집도 크고 투실투실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은 나를 데려와 놓고는 밥그릇에 주둥이를 집어넣고는 캣맘이 챙겨 넣어준 사료를 와그작 먹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따라 혼밥이 싫었던 모양이지” 하고 녀석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와그작 먹던 것을 멈추고 입맛을 다시며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뭐야! 기분 나쁘다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응해주었습니다.

녀석의 눈을 쳐다보고 곧바로 떠올랐습니다. 기억해내지 못해서 방문하지 못했던 카페의 이름을.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고양이의 보은’이라고 하는 것인가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녀석은 마주하던 눈을 다시 자신의 밥그릇으로 옮겨,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식사를 이어갔습니다. 

고양이의 보은, 고양이의 보은… 녀석을 뒤로하고 길을 걷는 내내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저는 녀석에게 뭔가 보은을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미궁에 빠졌습니다.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았다면 좋은 일이지 어째서 심각하기만 하느냐고 말씀하신다면 

딱히 반론할 이유가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고양이의 보은에서 고양이의 쪽지 정도면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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