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슬기 Jul 31. 2019

할머니와 어머니의 파스

여름의 기운이 한창인 평일 어느 날의 정오, 어머니는 외출을 하셨습니다.

거실로 나와 가만히 집안을 둘러보았습니다. 특별한 의미나 이유도 없습니다.

혼자 남아있는 집 거실에 가만히 서서 집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은 안방으로 향하게 되었지요.

활짝 열려있는 창문으로는 몸 전체를 꽉 쥐었다가 풀어주는 듯한 여름의 바람과 한 세트나 마찬가지인 

매미 울음소리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방바닥에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미우'가 등을 바닥에 붙인 채 낮잠을 즐기고 있었지요.

오랜 기간을 고양이와 함께 살아왔지만 이런 그림은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녀석이 낮잠을 자고 있으니 저도 한번 여유를 부려봅니다.

옆자리에 슬쩍 등을 붙이고 누우니 미우는 고개를 돌려 동그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눈을 감았습니다.(어쩐지 눈치가 보이는 기분입니다.)

천장이 보입니다. 

낮은 시선에서 방 안을 둘러보니 평소의 안방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서서 보았을 때보다 더욱 자세히 보이는 기분이 들더군요.

물건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어머니의 유전자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때 아득히 먼 저편에서 밀려오는 냄새.

이것은 분명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함께 하는 냄새입니다.

파스 냄새였습니다.

냄새를 따라 기억도 되살아 났습니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입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거실에 놓여 있는 로터리식 텔레비전에 가까이 앉아 

채널을 '두두둑' 돌려가며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그러다 흥미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대로 텔레비전 앞에서 등을 붙이고 잠들어 버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래저래 성가신 위치에서 잠을 잤던 일이 미안해지는군요.)

드러누워 눈을 감으려 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파스가 냄새납니다. 

하얀 직사각형 모양에 원형으로 펀칭이 되어있는 얇은 파스 냄새.(떼어낼 때 굉장히 아프죠.) 

외할머니께서는 어깨, 손목, 허리와 같이 몸이 불편한 모든 곳에 이 파스가 붙여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입니다만 이마에 붙이지 않으셨던 기억은 굉장히 안심입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원형 펀칭이 되어있는 얇고 흰 파스가 우선 자리합니다.

이랬던 기억과 경험이 이제는 점차 어머니에게 옮겨져가고 있다는 실감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눈가에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곤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미우에게 괜히 소리 내어 말해보았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림. 홍슬기

"미야오" 하고 미우는 잠결에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합니다.

가끔 저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기도 하는데 

그 능력을 살려 말을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귀찮게 하지 마"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50%, 60%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