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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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목요일,
쉽게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저녁에 마신 디카페인 커피? 낮잠을 자서? 무릎이 찌릿찌릿하는 날씨? 남편이 없어서? 여러 이유가 섞였는지 한참을 뒤척였고, 자주 깨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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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시에 일어나서 챙겼다.
며느리 혼자 전 부치러 가는 날. 남편은 출장을 갔으니 혼자라도 가야 하는데 경산까지 운전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 꽤 긴장을 했다. 더군다나 비까지 쏟아져서 비를 뚫고 렛츠고. 친절한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을 잘못 빠진다. 다행히 일찍 나온 덕분에 헤매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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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마자 커피 한 잔을 주신다.
늘 풍족하게 먹고 오는 큰 형님댁. 큰형님네 식구랑 고구마튀김, 전, 동그랑땡, 생선, 두부 등등을 준비했다. 1차 기름 파티가 끝나고 찾아온 점심시간. 불고기랑 명절 음식을 차려서 한 그릇 뚝딱 비운다. 큰 아주버님은 항상 맥주를 주시지만, 부릉이를 가져왔으니 석류즙으로 대신했다. 한낮의 와인과 석류즙 건배 짠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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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작은 형님과 아주버님이 오셨다.
아주버님=커피. 항상 친척들을 위해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내려주셨다. 오늘도 따뜻한 커피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커피잔을 들고 짠짠했다. 2차 음식 준비 더하기 수다를 떨었더니 5시가 됐다. 다시 비를 뚫고 컴백홈한 이숭이는 금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남편을 기다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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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붙이려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접속’. 며칠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드디어 봤다. OST가 계속 맴돌더니 비 오는 날이랑 잘 어울리는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혼자 보는데 센티멘털해지는 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엔딩 음악이 나오고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남편이 얼른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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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에 오는 시간이 다돼간다.
외투랑 우산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계획은 지하철역 앞까지 마중 나가는 거였는데, 혹시나 엇갈릴까 봐 전화를 걸었다. 이미 반쯤 와 있는 남편에게 내 위치를 알려줬다.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걷기로 했다. 굳이 이숭이는 전화통화를 하는 몹쓸 상황극까지 해가며 서로를 지나치는 장면을 연출해보려 했지만 실패. 엇, 남편이다. 웰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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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반칙을 했다.
아까는 통닭 냄새를 풍기더니, 이번엔 햄버거 냄새를 코끝까지 찔렀다. 배고픔이 극에 달한 이숭이는 컵라면 하나를 뜯었다. 나는 컵라면을, 남편은 케이크랑 젤리를 먹으면서 이틀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마음껏 쏟아냈다. 히히히. 어제는 없었던 우리집에 온기가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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