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10월 22일 화요일,
필라테스 32일 차(요가 128일 차).
운동을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야만 한다. 따뜻한 메밀차 한 잔을 호호 불어가며 마시고는 운동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내 몸의 밸런스를 맞추는 동작 위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균형감각을 위해 중심을 잡고 버티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호돌돌돌, 사시나무를 떨 듯 흔들리는 내 다리. 내 몸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나 체력 좋아지고 있는 거 맞지? 그런거지?
.
9시 운동을 끝내고 오면 하루가 길어진다.
씻기 전에 달걀 하나를 까서 먹고 씻으러 갔다. 운동 후에 단백질을 먹어줘야만 근육이 생기니까 지키려는 습관 중의 하나. 챙겨 먹자 단백질, 잊지 말자 근손실.
.
점심은 뭘 먹을지, 그냥 참을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근 갔다가 햄버거를 사 온 남편이랑 갑자기 맘스터치 파티를 열었다. 한 입은커녕 베어 먹기도 힘든 싸이버거를 먹고, 감자튀김도 계속 계속 집어먹었다. 점심시간, 내 생각을 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
맥심 커피를 마신다.
믹스는 내 상태가 바쁘거나, 일을 할 때, 머리를 쓰고 있을 때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끊지 못했던 걸까. 어쨌든 쌉싸름한 현실을 달콤한 맛과 향으로 위로를 해주는 커피 만세 만세 만만세. 그 덕분인지 논의가 그럭저럭 잘 된 것 같았다.
.
밥만 안치고 딩굴딩굴 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만 저녁엔 뭘 만들지 그려본다. 아마 버섯구이랑 달걀말이를 만들지 않았을까 예상을 해본다. 그러다 남편이 라면 먹고 싶다는 말에 바로 ‘오케이’를 외쳤는데, 집엔 봉지라면이 없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갑자기 마트로 가게 된다. 라면을 사러 갔지만, 우리 손엔 핫도그가 있다. 감자 핫도그를 먹는 중에도 ‘다음에 또 먹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이숭이. 둘이서 벤치에 앉아서 재빨리 먹는다. 그래, 이 맛이야. 맛있다. 흐흐흐.
.
본격적으로 마트를 돌기 시작했다.
생필품은 왜 동시에 떨어지는지.. 폼클렌징, 핸드크림을 여러 개를 담고 우유, 과자, 라면을 집어 들었다. 배가 불렀는지 라면을 선택하는데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트에 있는 라면들이 꽤 식상해서 흥미를 잃었달까. 무파마, 안성탕면을 사고 수면잠옷도 하나 사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밥 먹는다고 했는데, 오늘 하루는 바깥 음식만 먹었다. 역시 언행불일치의 삶이여.
.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정리했다.
새로 산 잠옷을 입어보고 혼자서 패션쇼를 열어본다. 요상한 워킹으로 남편에게 다가가는 이숭이. 리액션은 풍부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화장실 수도꼭지였다. 물이 새는 걸 발견해서 공구를 들고 가서 뜯어보고 한참을 보더니 부품을 갈아야 한다고 했다. 내일 남편 대신에 부품 사러 철물점에 가야지. 전에 봐놓은 테이프도 사야지. 킥킥킥.
.
꽤 늦은 시간에 드라마를 켰다.
‘동백꽃 필 무렵’ 9화. 나보다 남편이 용식이의 매력에 폭 빠졌는지 용식이만 나오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 둘이서 몹쓸 성대모사까지 하다 보면 웃겨서 낄낄거리기 바쁜 우리. 이번 편에서는 갑자기 심장이 쿵! 한 장면이 나와서... 돌려보고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 소곱창 같은 매력이 있고만. 왜 이렇게 계속 생각나는 거여.
.
오후에 엄마랑 통화를 하고 끊었다.
부재중이 떠있길래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아까 할 말이 있었는데 까먹었다’고 했다. 너무 삭막한 것 같아서, 이제부터 전화 끊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로 약속했다는 엄마랑 아빠. 그 말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아서 곧바로 나는 엄마에게, 아빠에게, 아빠는 나에게, 엄마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외친다. 스피커폰 사이로 느껴지는 어색한 공기들. 서로 낯간지러운데 그게 또 재미있어서 신나게 웃어버린다.
.
잠시 후 이서방에게도 고백하는 엄마랑 아빠.
다들 머리를 긁적이며 웃다가 전화를 끊는데, 무슨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오래 산 부모님의 성격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식인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빠와 엄마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진짜 진짜 놀랐다. 앞으로도 더 많이 표현하고 더 잘해드려야지. 엄마, 아빠 알라뷰.

작가의 이전글20191021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