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11월 4일 월요일,
6시에 맞춘 알람은 이미 꺼버렸고, 남편이 일어나는 소리에 나도 같이 깼다. 방에 불을 켜는 동시에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오만상 찡그린 이숭이. 그런 모습을 보는 남편이 ‘이숭이 눈 다 못 떴네’라고 말한다. 내 눈 어디로 갔지. 곧바로 부엌에 가서 남편의 간식을 통에 담았다. 밥 대신에 고구마, 달걀, 과일이라 다행이고 감사한? 아침이었다.
.
부엌을 정리하고 다시 침대로 향했다.
밖이 밝아질 때까지 쿨쿨 자고 일어난다. 어젯밤에 잔 것보다 아침에 잔 몇 시간이 더 잘 잔 것 같다. 겨우 땅에 발을 딛고 밤새 닫혀있던 우리집에 바깥공기를 끌어들였다. 오늘 날씨 흐리다가 맑음, 고무나무도 맑음, 빨래도 맑음, 내 기분 맑음.
.
달걀 하나, 호박고구마 둘, 빵 하나를 앞에 두고 먹는다.
물을 팔팔 끓여 보이차를 진하게 우려 마신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 목록을 보다가 ‘알로, 슈티’를 틀었다. 프랑스 북부지역 베르그에 사는 사람들은 고통받고 불행할 거라는 생각이랑 다르게 하루를 참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아가고 있다. 낮술 세상이라고 하길래 궁금해진 곳이랄까. 슈티라는 귀여운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정겹게 사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추천하고 싶다.
.
내일 시장에 갈 거라 냉장고를 파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준비한 메뉴는 표고버섯 굴밥, 가리비 미역국, 들기름 달걀후라이와 깍두기였다. 양념장을 넣어 먹는 밥을 좋아하면서도 잘 안 해 먹었던 우리는 모처럼 큰 그릇을 꺼냈다. 뽀얀 국물의 미역국이랑 같이 먹기 좋았던 밥상이었다. 밑반찬도 똑 떨어졌다. 내일은 꼭 반찬을 만들어야지.
.
나 대신에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
밤 9시가 넘어서 차를 데우고 과자를 꺼내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노래를 부르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력 풍부해서 코미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잔잔하다. 그래도 장면 하나하나, 음악과 영상에 푹 빠지기 좋았던, 메시지가 좋었던, 특히 LIFE’ 모토가 와 닿았던 오늘의 영화. 그리고 보드가 타고 싶어 지기도 했다. 우리집 신발장 위에서 하염없이 쉬고 있는 보드한테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
.
월터처럼 나도 멍하니 상상을 하곤 한다.
종종 사색을 하고, 내 시간을 가진다. 평소엔 일상을 관찰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과 냄새에 집중을 한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는 걸 매일 기록하면서 말이다. 점점 시들어가는 장미꽃, 흐린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잔잔한 바람 소리, 사각사각 연필 소리,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들, 삑삑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들.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월요일의 모습들. 오늘도 PEACE.
_

작가의 이전글20191103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