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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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목요일,
10시에 잠을 자다니.
눈이 시려서 뜨고 있는 게 힘들었다. 이럴 땐 그냥 잠이나 자야지. 잠버릇이 고약한 나, 잠귀가 밝은 엄마라 같이 자고 싶어도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오늘도 실패할 것 같았지만 큰방에서 버티고 있었더니 같이 잘 수 있었다. 비..록.. 싱글 침대라 엄마한테 다가갈 순 없어도 같은 방에서 잔 것만으로도 좋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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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남편의 문자, 부재중을 확인했다.
빨래를 갰다며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전화를 했다던데 그땐 이미 나는 꿈나라로 저 멀리 여행 중이었겠지. 자러 간다는 문자, 그리고 회사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며 그냥 웃음이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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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랑 고성 장터로 향했다.
두 분이서 자주 가는데 나는 처음이다. 장날이라 생각보다 큰 규모로 시장이 열려있다. 싱싱하고 신선한 야채, 과일, 채소, 생선 등 만으로도 눈이 빙글빙글. 엄마가 들고 간 들깨로 가루를 빻고 기름도 짰다. 셋이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은근히 지갑이 열리고 있다. 돈 한 푼도 가져오지 않는 나는 옆에서 알랑 방귀만 뽕뽕. 어묵 두 개, 호떡까지 얻어먹었다. 엄청난 크기의 메기, 상자에 들어 있는 아기 강아지들, 알록달록 과일들, 초록이 예뻐 사고 싶어 지는 채소들, 장날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뻥이야 소리. 내가 좋아하는 감성이 시장에 모여 있었다. 시장 감성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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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탕을 한 사발 비우고 동네 마트를 돌았다.
집에 오자마자 아빠랑 라디오 퀴즈에 참여해보려고 전화기 앞을 붙잡고 있는 우리. 전화 연결은 됐지만 노래 가사를 틀려서 실패! 지난번엔 성공해서 두부랑 된장, 간장, 숙취해소 음료를 받았던 아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고 있는 아빠의 취미. 그의 소확행은 라디오였다. 다음엔 노래 가사 정확하게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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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오빠랑 넷이서 저녁밥을 먹는다.
엄마가 오후에 만든 총각김치와 나물들, 생선 한 마리가 맛있게 차려졌다. 친오빠는 가끔 아니 종종 나랑 볼링을 치러 가고 싶어 하는데, 피곤해하거나 팔이 아프다는 이유로 몇 번을 거절했다. 오늘은 오케이. 동생이랑 나랑 오빠랑 셋이서 갑자기 볼링 모임을 열어버렸다. 파이팅만 외치다 끝난 거 같지만 신나게 공을 잘 굴리고 왔다. 음료수 내기도 꼴등, 게임비 내기도 꼴등 했는데 왜 오빠가 다 냈을까. 천 원짜리도 안 챙겨 온 걸로 봐선, 이건 아마 이숭이의 큰 그림이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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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 편한데, 대구집이 편하다?
늦잠 자고 밥도 엄마가 차려주고, 먹고 놀고 편하고 좋은데 대구집이 그립다. 이래서 내 집이 편하다고 하나보다. 그동안 아빠 엄마를 못 봤으니 애틋한 마음의 유효기간은 이틀인가 보다. 3일 째부터는 엄마의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코오. 분명히 대구 가면 그리워질 친정, 우리집인데..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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