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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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금요일,
눈을 뜨면 아홉 시.
남편은 꼭두새벽에 인천으로 출장을 떠났다고 했다. 그 시간이면 쿨쿨 곯아떨어져 있을 이숭이. 기본 7-8시간을 채우고서야 살며시 눈을 떠본다. 다들 깨어있는 우리집. 굿모닝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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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옆에 붙어서 컴퓨터 메모리카드 청소하는 걸 구경했다.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하면 뛰어가서 갖고 오는 우리집 서열 막내. 다행히 모니터는 켜졌고 훈훈한 분위기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점심은 삼겹살 파티가 열렸다. 어제에 이어 넷이서 먹는 밥. 쌈도 싸 먹고 갓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 종류별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엄마의 말 한마디에 서운함 대폭발. 대구가 가고 싶어 져 시계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도 후식은 먹어야겠다 싶어 과일 몇 개를 집어 먹다가 설거지를 하고 짐을 챙겼다. 나 이제 대구 갈래.. 분명히 서운했는데 또 엄마의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혼자서 콧물 찡, 눈물 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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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헤어짐은 아쉽다.
어제부터 기다려 온 대구행이었는데, 막상 빠빠이 하려니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바다는 왜 이리 예쁜지. 이렇게 대구로 가버리면 후회할 거면서 감정하나 컨트롤 못 하는 철부지 이숭이. 딸 좋아하는 밀감 한 봉지를 사 오신 아빠의 마음과 밀감을 꾹꾹 넣었다. 손님한테 차려주라며 만든 엄마표 반찬들. 참기름, 들기름, 냉동만두, 사과, 도라지청 등등 스티로폼 상자 한 가득 채워주셨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몰라주면서 당장 서운함만 생각하는 딸은 오늘도 반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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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구로 고고.
집에 가기 전에 들르는 밈 카페에 갔다. 미니 부릉이를 타고 장거리를 가는 것도, 대구여행도 처음인 우리는 한껏 신났다. 흐드러지게 날리는 낙엽도, 알록달록 산도, 봄처럼 따뜻한 날씨도, 노랗고 빨간 나뭇잎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조수석에서 졸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떠드는 나, 그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깔깔 웃는 미니와의 여행. 빵집도 가고 동성로도 가고 통닭도 먹고 다 먹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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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 우리집이다.
그 며칠 집을 비웠다고 엘리베이터 층수도, 비밀번호도 헷갈리다니. 대구가 낯설어지다니..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도레미파솔라시도 하이톤으로 ‘여어어어보오오오오~’를 외쳤다. 그동안 평화로웠던 시간아 안녕. 이숭이가 돌아왔다는 걸 체감한 듯한 표정이 보인다. 흐흐흐흐. 아이쿠 이사장 반갑구먼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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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양꼬치로 땅땅땅.
양꼬치랑 꿔바로우는 우리의 세트 메뉴. 테라 맥주까지 나눠 마시면서 짠짠짠. 핫하게 구워 먹는 양꼬치, 서비스로 주신 손만두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나니 배가 너무 부르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들어온다. 잠시 후에 카페에 가서 야밤 커피를 마시는 코스까지 끝내고 편안한 금요일을 보내고 있다. 우리집에 와서 좋고 남편을 봐서 좋고 미니가 놀러 와서 좋고 금요일이라 좋은. 그저 좋은 지금. 지금은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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