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돌아보며,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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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돌아보며,
가을을 가을이라 부를 수 있었던 계절.
연두 초록잎이 어느새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고 가을스러운 느낌을 잔뜩 뿜어냈다. 우리집에서 보이는 나무와 산의 색깔이, 발에 걸리는 낙엽들이 아름다웠다. 어떤 건 노랑, 어떤 건 빨강, 어떤 건 주황, 어떤 건 은은하게 섞인 빨강주황노랑. 예쁘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면 2019년의 끝자락이 다다른 것 같아 아련해지고 몽글한 그런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많이 웃고 행복했고 소소했던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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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가을바다>
우리는 틈틈이 걸었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산을 좋아하는 시아버지의 소확행은 우리와 함께 산을 오르는 것. 각자의 일정 때문에 날짜 잡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번에는 달력을 꺼내서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가을산 항녕 화왕산에 가기로 했다. 이런, 시부모님과 나들이를 가면 눈치 없는 비가 내린다. 이번에도 피해 갈 수 없다. 출발할 때가 비가 날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비가 퍼붓는다. 땀을 말릴 시간도 없이, 억새를 구경할 여유도 없이 하산을 했지만 비 오는 날의 가을산도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가을바다, 통영에 며칠을 다녀왔다. 대구에서 살다 보니 바다의 존재를 까먹곤 한다. 차를 타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 해안도로 쭉 펼쳐진 파란 바다를 보면서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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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도전>
어쩌면 고집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타입. 대신 마음속에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일렁일 때는 하고 마는 타입. 11월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구에서 첫 마켓을 열었고, 손글씨 수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경험들을 천천히 해내고 있는 건, 역시 ‘꾸준함’이 아닐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를 기록하는 일,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것 모두. 덕분에 여기저기서 기회가 생겼다. 내게 그림을 맡기기도 하는 큰 일까지.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눈이 시리도록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을 하는가 하면 포토샵을 잘 다루지 못해 낑낑거렸지만 여러 도움을 받아 해냈다. 그런 나를 칭찬해. 그냥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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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동률님>
피 터지는 예매 전쟁을 피켓팅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 열기를 직접 느꼈다. 앞자리일수록 좋고 이왕이면 가고 싶은 날짜까지 정했지만, 예매 전쟁을 치르는 사람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손에만 걸려라 마우스를 휘갈기고, 내 앞에서 사라지는 좌석을 보며 발 동동 걸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티켓이 집으로 왔다. 이번에는 뒷목 담 때문에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찬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고 우리 자리에 앉아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일 년 만에 만난 동률님은 더 멋있어졌다. 예전에는 본인이 돋보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연주자를 돋보이게 했다. 망원경까지 들이대며 손가락, 얼굴을 보려 노력했던 나를 떠올리며 웃게 된다.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며 불안해했던 작년과는 달리 더 단단해진 모습을 보며 묵묵히 자신만의 길로 가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던 올해. 고독한 항해 노래는 동률님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다시 찡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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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랑 용식이>
정신없이 푹 빠져봤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그전에 멜로가 체질을 재밌게 보고 대사의 섬세함, 배우들의 연기력, 기획자의 센스가 많이 느껴졌었는데. 종영되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있을 줄 알았는데 동백이랑 용식이가 우리 마음을 기냥 확 뺏아가 버렸다. 멜로에 스릴까지 있어 자꾸만 궁금하게 하는 마성의 드라마. 사랑 앞에서는 겁 없는 남자 용식이, 점점 강해지고 웃는 동백이를 보면서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다. 남편이랑 같이 드라마를 보면서 먹는 간식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거면 됐지 뭐.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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