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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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월요일,
악몽을 꿨다.
나 혼자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행여나 들킬까 봐 도망을 가는 꿈. 남편도 나오고 가족도 나오고 지인들도 나와서 더 무서웠는데 꿈이라 천만다행이었던 이숭이. 일어나자마자 나 무서웠다고 힘들었다고 남편한테 쫑알쫑알..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웃긴 내용들도 있었다. 주먹만 한 알밤을 까먹는 꿈, 도망가려고 움직이는 천의 반동에 자동차가 날아가는 꿈. 어쨌든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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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몇 시간이 지났다. 일어나서 환기를 시키고 세탁기를 돌렸다. 동률님 노래가 흘러나오는 우리집은 지난 공연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오 나의 동률님. 집 앞으로 온 택배 상자. 주말에 엄마가 김장을 했다며 택배를 보내셨다. 들기도 힘들 만큼 무거운 상자를 열었더니 비닐 몇 개로 꼼꼼하게 포장된 김장김치랑 파김치, 무랑 고구마가 들어있었다. 우리를 위해 준비한 엄마의 마음이, 택배를 부치는 아빠의 마음이, 조심히 잘 전달된 기사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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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엔 김치가 많이 남아있다.
평소에 밥을 자주 먹지 않아서 쌀이랑 김치 소비가 적다. 그래도 비상식량을 쌓아놓듯 김치를 보관해둔다. 통 여러 개에 나눠 담아 냉장고로 슝. 지난 김치, 묵은지, 김장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우리집 반찬가게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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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다.
낮에 식빵을 구워서 잼이랑 크림치즈를 발라먹었는데도 다른 게 먹고 싶나 보다. 오늘따라 먹고 싶은 짜파게티. 인터넷에 황금 레시피를 찾아 물을 끓이고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는다. 물 조절이 중요해서 오늘은 더 신경 썼더니 꽤 촉촉하고 맛있게 만들어졌다. 맛있다. 냠냠냠. 조만간 남편이랑 짜파게티 만들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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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쩌다 로맨스’를 보고 ‘나의 아저씨’ 8화를 연달아 봤다. 6시 이후 금식은 마음속의 다짐이었나 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포테토칩을 꺼내서 먹는 우리는 사과즙도 마시고 고구마도 먹고 그냥 보이는 대로 다 먹고 있었다. 매일 먹는 이야기를 쓰는 내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먹는 일을 빼면 하루의 일이 꽤 단조롭다. 디톡스를 해봤기에 ‘맛있는 음식’을 바로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걸 느낀다. 결론은 나 오늘도 행복했다고. 행복한 월요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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