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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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화요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둘 다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남편보다 일찍 일어났다. 괜히 승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방을 빠져나가자 마자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물도 일찍 마시는구나. 벌컥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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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라 하루 종일 같이 붙어있었다.
물론 각자 할 일이 있을 땐 떨어져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늘어지도록 하루를 낭비하는 일은 참 즐겁다. 큰 형님한테서 주문받은 목공 작업 설계도를 그리고 나무를 구매하는 남편,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듯 폰을 가지고 노는 이숭이. 그리고 잔잔한 템포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음악들. 이 곳이 지상낙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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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쿠키 한 개, 브라우니 한 개, 강정 네 개. 뭔가를 먹을수록 다른 음식을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먹보의 세계. 엄마표 식혜를 한 잔씩 마시고 사과 두 개도 깎아 먹는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돼서 밥을 차렸다. 불고기를 굽고 튀김을 바삭바삭하게 데운다. 나물이랑 깍두기도 나왔는데, 이 반찬은 앞으로 3일은 더 등장할 것 같다. 아무리 간식을 먹어도 밥이 최고인 나이가 됐는지, 이제야 든든해지는 똥똥한 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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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틀었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내용에, 몇 번을 참고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편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미련 없이 냉큼 꺼버리고 ‘유열의 음악 앨범’을 틀었다. 사과즙, 레드향 하나랑 그리고 볶은 현미를 우려낸 현미차. 숭늉을 연상케 하는 뜨끈뜨끈 구수한 맛과 영화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옛 음악에 위로받는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잘 먹고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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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까 둘이서 영화 제목을 몸으로 설명해서 맞히는 놀이를 했다. 둘 다 물음표 오백개씩을 찍기 바빴다. 추격자, 레옹, 어바웃 타임, 부당거래, 접속, 라라랜드, 미 비포유, 곡성 등등. 정답을 듣고 탄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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