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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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목요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남편.
늦었지만 괜히 아쉬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한 번 더 열어본다. 빠빠이 인사를 나누고 시작된 각자의 목요일. 불행인지 다행인지 길에 차가 없어서 출퇴근 시간이 빨라졌다고 했다. 아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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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없는 얼굴로 잠깐 밖에 나왔다.
쫑쫑 걸음으로 걸어가면 더워질까 봐 옷을 얇게 입었는데, 흐리고 춥다.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고 차만 쌩쌩 달린다. 우체국 앞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 어쩌다 보니 1등으로 서서 마스크를 기다려본다. 갑자기 한 이모를 시작으로 내 뒤에 줄이 쭈욱 늘어져있다. 하지만, 마스크가 없다며 3월 2일 오후에 오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결국은 헛걸음. 인터넷 기사만 믿고 불안해하면서 나왔는데..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도 30명은 넘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상처 주지 마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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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부치고 오던 길로 돌아왔다.
편의점과 마트를 빼고는 다 문이 닫혀있다. 온통 ‘휴업’.. 이 글자가 그저 슬프네. 얼른 괜찮아져야 할 텐데.. 마트에 들러 딸기랑 괜히 또 이것저것 담았다. 비상식량도 틈틈이 사서 모아야지..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보리차를 우렸다. 추웠던 밖과 차가웠던 마음에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달래 본다. 갑자기 똑 떨어진 컨디션에 허우적거리다가 떡 두 조각이랑 삶은 달걀 하나를 먹었다. 역시 집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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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갈아서 라떼를 만들었다.
숟가락으로 떠먹다가, 달달해서 신나게 여러 모금 들이켜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였다. 나날이 늘어가는 확진자 수. 그리고 딸이 살고 있는 대구의 소식에 엄마는 너무 걱정된다며 하루에도 한두 번 전화를 붙잡으셨다. 반찬이나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주시는 엄마의 마음에 뭉클해진다. 전화를 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손 소독제랑 비상식량을 또 담았다. 열심히 담아서 결제하려고 보니 배송이 마감돼서 살 수가 없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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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엔 진통제 한 알을 먹고 곯아떨어졌다.
배 위에는 핫팩을 올려두고 쿨쿨쿨. 저녁을 차리지 않는 불량주부 이숭이. 퇴근한다는 남편에게 죽, 라면, 만두와 같은 보기를 들려줬다. 저녁은 너구리 라면! 880ml 물 양을 맞춰서 끓였더니 맛있다. 왜 진작 계량하지 않았을까. 헤헤. 오늘도 우린 ‘또 오해영’ 16화 한 편을 보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진짜 ‘여유’가 그리워지는 날. 우리 모두가 다시 웃으면 좋겠다. 대책 없이 즐거운, 흥의 민족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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