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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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수요일,
어제 꿈에는 대학생으로 돌아갔었다.
언니랑 부어라 마셔라,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던 그때가 나왔다. 그리고 한때 같이 놀았던 친구들도 나왔고, 이웃이 우리집을 감시하는 꿈도 꾸고, 동네 술집(4,50대 아저씨들이 많은, 그러나 준코 스타일)에서 놀던 꿈도, 나만 아는 살인 사건에 무서워했던 꿈도 꿨다. 20대의 지난날이 그리웠나 보다. 아, 오늘 아침도 피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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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떡 몇 개를 꺼내 해동시켰다.
늦게 집에 올 남편의 저녁 간식이 되어줄 찰떡. 나도 나중에 먹으려고 꺼내 둔 두 개. 잠깐 눈을 붙이고 8시 반에 일어났다. 씻고 음악을 틀고, 보리차를 우리는 시간. 제목과 배우들에 끌려서 고른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고현정과 이진욱, 그리고 호감배우 서현우가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랑이가 나온다. 잔잔하고 연한 회색빛 감정이 맴도는 영화였다. 녹록지 않은 현실, 꼬일 대로 꼬이는 내 인생, 그럼에도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응원하게 된다.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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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들이 왔다.
비상식량으로 산 라면과 생수, 초코파이랑 과자들. 왜 더 먹고 싶어 지는 걸까. 오후엔 갑자기 냉장고 정리를 하고 갑자기 수건 빨래를 했다. 커피가루를 넣어둔 유리그릇 하나를 깨 먹었고, 치워야 할 것들이 더 쌓였다. 갑자기 분리배출을 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초코파이를 하나 쑉 빼먹고, 저녁엔 왕뚜껑을 하나 뜯었다. 이상하네. 비상식량이 아니라 그냥 간식이었나.. 배부르게 먹고 영화 ‘완득이’를 틀었다. 재미있네 완득이.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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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늦게 오니까 너무 심심했는지, 파 한 단을 꺼냈다.
귀찮아서 한 이틀 내버려 두다가 오늘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뿌리를 잘라내고 깨끗이 씻어낸 파가 너무 귀엽다. 하얀 부분과 초록 부분을 따로 통에 넣고는 눈물 콧물 쓰윽 닦아낸다. 다 끝내고 나면 뿌듯해지는 파 놀이. 그리움을 파 손질로 승화하는 이숭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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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저녁은 비비고죽.
씻는 동안에 전자레인지 2분 30초를 돌리는데, 펑! 소리가 났다. 오메. 봉지가 쓰러져 죽이 사방을 튀었다. 하.. 날아가버린 버섯 두 개랑 죽 아까워.. 결국 전자레인지까지 청소를 하고 나서야 하루를 끝냈다는 슬픈 이숭이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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