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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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수요일,
머릿속엔 미나리와 달고나 커피였다.
점심으로 미나리를 꺼내 밥이랑 같이 먹으려는데 갑자기 등장한 삼겹살. 혼자서 고기 굽고 미나리 굽고 마늘 굽고, 생미나리 와작와작. 이 초록이 내게 활력을 주고 있다. 당분간은 계속 미나리가 출동할 우리집 식단. 반가워 미나리야. 이숭이 시네마는 ‘시절인연’ 상영 중. 아련하고 잔잔할 거라는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왈가닥 하고 제멋대로인 탕웨이가 밉지 않았던 영화. 극 중에 남자 주인공이 수더분하고 진국이라 되게 몰입해서 봤다. 배우를 찾아보다가 최근 기사를 읽고 로망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지만.. 프랭크 역할은 멋있었다..
해가 쫑긋 나왔다.
피부처럼 늘 붙어있는 수면잠옷, 후리스, 수면양말과 긴 발목양말, 담요들. 세탁기에 넣어 때를 빼고 건조대에 널어둔다. 너무 약하게 탈수를 했는지 물이 뚝뚝뚝. 후리스가 아니라 수(水)리스였나.. 수(水)면양말이네.. 담요는 물바다가 될 것 같아 다시 세탁기에 넣어 탈수를 했다. 뽀송뽀송 빨래 널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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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부치러 나갔다.
택배 회사에 가는 길에 발견한 개나리. 노란빛을 돋우려 작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봄날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바람이 부는지. 나온 김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었는데, 외출 자제가 떠오르고, 추워서 몸을 돌렸다. 계단이나 오르락내리락해야지.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는데 마스크 때문에 숨이 찬다. 헉헉헉. 그새 더운지 인중에 땀이 한가득 고였다. 다시 1층까지 내려갔다가 우리집까지 올라갔다. 짧은 거리에 다리는 호돌돌돌. 아 좋은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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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깎고 앞머리를 잘랐다.
자르고 자르기를 반복하고 나니 앞머리가 눈썹에 걸쳐져 있다. 아, 많이 자른 거 같은데..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니 앞머리가 더 올라가 있다. 아이참. 달고나 커피나 만들어야지. 푹 빠지면 계속하는 타입의 이숭이. 오늘도 맥심 믹스커피랑 우유, 핸드믹서를 꺼낸다. 쒸잉쒸잉 열정적으로 젓고, 열정적으로 들이켰다. 커피 때문에 또렷할 줄 알았던 나는 낮잠까지 자고 일어난다. 왼쪽으로만 돌아서 잤더니 볼이 빨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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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남은 통닭을 꺼낸다.
데워서 살코기만 분리해서 다시 후라이팬으로 볶았다. 에그 스크램블, 간장에 조린 양파, 불에 슥슥 구워낸 미나리로 완성된 치킨마요 덮밥. 우리가 좋아하는 마요네즈를 짜고 김가루 솔솔 뿌리면 완성. 한솥에서 먹던 그 맛이 나는 덮밥. 여기서 포인트는 김가루. 오늘은 특별 손님 미나리까지, 크게 한 숟갈 떠먹기 좋은 저녁밥이었다. 미나리는 어디에든 잘 어울려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즐겨먹던 미나리 볶음밥도 생각나는 거 보니 조만간 만들어 먹어야겠다. 미나리사랑. 미나리러버. 미나리 매력에 폭 빠지고 만 이숭이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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