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3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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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목요일,
8시 30분에 일어나 꼼지락꼼지락.
각자 폰을 가지고 노는 휴일 아침. 알람이 없어도 되는, 늦잠을 자도 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긴 휴일이 왔다. 정신없이 사과 한 개를 먹고 있는데, 남편이 ‘거 참 되게 맛있게 먹네’라고 말한다. 그가 세탁기를 돌리고 오는 사이에도 딩굴딩굴. 집이 좋다 좋아. 무엇보다 같이 늘어져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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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잘 챙겨 먹던 브런치.
어느새 부엌도 휴일을 맞이하고 있다. 남편이 방에서 냉장고 요리책을 꺼내 온다. 간단하면서도 도전해 볼만한 요리, 동시에 우리 입맛에 맞는 것들을 찾아본다. 274개 중에서 후보로 갈치 카레 구이, 소불고기, 칼국수, 전복죽, 콘플레이크 치킨 커틀렛, 호두 쿠키가 나왔다. 결론은.. 바지락 칼국수를 사 먹고 장을 보는 걸로.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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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언제 안 좋을지 몰라 사과랑 검정 비닐 한 개를 챙겼다.
시장에 갔지만 문을 닫아서 바로 칼국수집으로 향한다. 바지락이 엄청 많이 들어간 칼국수. 쭉쭉 찢은 겉절이랑 같이 곁들이니까 맛있어서 쉴 새 없이 먹었다. 곧바로 죽전동에 가서 남편 일을 잠시 보고, 마트에 가서 오렌지랑 당근 그리고 여러 개를 담았다. 저번에 먹은 소보루가 맛있어서 빵집에 들러 소보루빵 두 개랑 팥빵 하나도 샀다. 시-원한 청포도 음료를 들고 컴백홈. 갑자기 온 여름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났다. 잊고 있었던 대구 햇빛... 따갑고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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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게 씻고 다시 누웠다.
한 시간 넘게 자는 낮잠 타임. 겨울 이불을 보내고 얇아진 두께가 낯설어도 잠은 잘 잔 듯하다. 내가 곯아떨어질 때면 남편은 진정한 자유시간을 가진다. 팥빵이랑 포도를 먹으면서 슬램덩크 만화책 정주행 시작. 방에서 ‘깨어났다’는 의미로 요상한 외계어를 방출하면 그의 시간은 올 스톱. 갑자기 셰프로 변신한 사람. 감자를 채 썰어 뢰스티를 만들고, 그 사이에 이불 빨래는 팡팡팡 돌아가고 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천천히 보고 싶은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감자전 한 입 먹으면서 보는 이 드라마 너무 재미있잖아. 부부의 세계는 생각도 안 나고 그새 잊혀졌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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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네 백수처럼 딩굴딩굴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밤 열 시에 세차하러 가기로 한 걸 까먹었단다. 부랴부랴 세차 도구를 챙겨서 나간 사람. 그 시각 10시 30분. 돌아오는 시간은 새벽 1시쯤으로 예상. 그에게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뽀송뽀송 빛내고 돌아오십쇼. 5월에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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