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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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월요일,
자다가 남편 볼을 쓰다듬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정한 손길과는 다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새벽에 똥그래지던 눈망울에 머쓱해지던 이숭이. 아이참, 그냥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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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쯤에 눈을 떴다.
씻고 나왔더니 남편은 달걀을 삶고 과일을 꺼내고 있다. 드립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휴일. 남편이 쉬는 날이라 둘이 함께 월요일을 보내는 것이 그냥 좋았다. 이번 연휴 만세 만세 만만세. 아침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가 오늘 미션이 생각났다. 거실 커튼 세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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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시작이었다.
갑자기 청소에 필 받은 이숭이. 자연스레 창문으로 옮겼고 내가 젖은 수건으로 한 번 닦으면 남편은 뒤따라 신문지로 쓱쓱 밀었다. 집에 유리랑 거울은 왜 이리 많은 걸까.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수건을 개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그러다 이제는 창틀을 사수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송화가루 때문에 노란 먼지가 그득그득 쌓이고 있는데 마침 잘 됐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닦아보자. 31도까지 올라가는 5월에 대청소를 하다니. 날씨를 봐가며 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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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볼 빨간 사춘기였다.
아침에 산뜻하게 씻고 나온 몸은 무색하게 땀범벅이었다. 고무나무 이파리도 슥슥 닦아주고 눈에 보이는 먼지들은 다 닦고 다녔으니 이제 나만 닦으면 될까.. 어제 나태하게 보낸 것 같아 만회를 하고 싶었던 걸까. 뿌듯하지만 지친 몸으로 마주 앉았다. 남편이 밑간을 해둔 닭가슴살 요리는 오늘도 불발. 결국 김밥 두 줄을 사 와서 육개장 컵라면이랑 시원하게 비웠다. 나 바깥 음식 스타일 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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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30분쯤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반팔티가 등장했다. 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여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돌아다니는 우리. 반짝이는 강 길을 따라 달리고 보라색, 노란색, 흰색 꽃들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갑자기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기프티콘을 쓰려고 일부러 가게로 갔는데 어디 갔냐 기프티콘. 왜 없냐. 결국은 우리 지갑을 여는 흥청망청이들. 전복 한 팩을 사고 집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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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간고등어 정식을 먹는다.
다행히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수정과도 두 잔이나 마셨다. 그 근처를 돌면서 산책을 하면서 평화를 만끽하는 우리. 나간 지 5시간 만에 집에 왔다.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보는 ‘낭만 닥터 김사부’ 1화. 오늘 시작했는데 ‘오메’를 몇 번이나 외친 걸까. 빠른 전개 무엇. 그리고 일기 쓰는 도중에 갑자기 눈물 터진 우리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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