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6월 14일 일요일, 새벽 2시, 빗소리에 깼다. 자기 전에 술렁술렁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밤새 이 온도 그대로 유지했으면 했는데.. 거침없이 퍼붓는 초여름비. 문을 다 닫으니 뜨끈해지는 우리방.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요일 아침, 부지런히 울려대는 알람시계, 그 시각 7시 30분. 굿모닝. . 삶은 달걀과 콩물 한 잔을 곁에 둔다. 남편은 매주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서 오늘도 그곳으로 출동했다. 시원한 물, 우산, 시부모님께 드릴 참외랑 메론도 챙긴다. 빗길에 조심히 운전하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도 함께 건넨다. 빠빠이 이따 만나요. . 늘어진 고양이처럼 쭈욱 늘어난 이숭이. 설렁설렁 잠들고 설렁설렁 놀고 있는데 남편이 끝났다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는 남편이 반가워 신났는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꼬물꼬물 막춤을 춰댄다. 짜잔!하면서 내게 보여주는 서프라이즈 선물. 빨갛게 익은 자두다! 나무에 자두가 엄청 열려서 따왔다고 했다. 현실은 자두 서리꾼이지만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로맨티스트. . 나는 밥이랑 치킨을, 남편은 카레를 끓였다. 바삭바삭 가라아게를 올린 매콤한 카레. 평소에 잘게 썰어먹던 감자를 큼지막하게 베어 먹었더니 그 식감이 좋다. 삼시세끼 보면서 먹는 밥은 어찌나 맛있던지 금방 다 먹어치웠다. 어김없이 출동한 식곤증. 20분을 맞춰놓고 낮잠 1시간을 잤다. 꼬질꼬질 이숭이와 담쟁이 폼롤러 효선생. . 놀면 뭐하니를 보는데 내가 왜 계속 리듬을 타고있을까. 저녁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한입피자를 데우고 과일을 꺼낸다. 친오빠가 보내준 백자메론, 남편이 사 온 수박과 훔친 자두. 킥킥킥. 큼지막한 칼로 메론을 참 이쁘게도 깎는다. 여름 과일은 치명적인 무더위도 이기게 하는 힘이 있다. 시원함에 기분이 좋아지는. 꼬깔콘까지 먹고 나서야 ‘적당히 먹을걸’ 후회하는 이숭이였지만 그래도 행복해. 나무도 행복하지? 남편 만세. 과일 만세. 일요일 만세. 그냥 다 만세.

작가의 이전글20200613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