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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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일요일, 4일 연달아 먹는 카레는 별로였던가. 어젯밤 양치질을 다 끝내는 순간 입 안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불안한 징조. 바로 화장실 변기로 고개를 돌려 우웩웩. 과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속을 비워버리고 마는 강단있는 나무. 나는 장 청소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위로 뱉어버린 변비약과 카레 잘 가라.. . 허기짐을 안고 잠이 든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고, 오늘이 ‘하지’임을 알게 됐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하루가 왠지 길 것 같다며 거실로 당당하게 입장한 우리의 첫 끼는 시리얼. 소파에 드러 누워 책을 읽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남편에게도 공유하는 순간이 좋았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이를테면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지,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지, 잊지 않고 늘 새겨야 할 마음은 어떤 것인지 등등. 한 30분 읽었나,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드르렁 쿨쿨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남편이 내 시야에 사라진 걸 알았다. 주방에서 들리는 소음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샥샥샥 설거지, 팔팔팔 콩나물 데치는 소리, 칼칼칼 칼질하는 소리들. 레시피를 찾고 콩나물 손질을 하고 무치던 그 사람, 야채를 준비해서 간장 오리고기를 굽던 그 사람. 그리고 잠결에 밥을 안치던 나. 그렇게 우리는 두번 째 끼니가 완성됐다. 디저트는 메론이랑 자두, 그리고 놀면 뭐하니. .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작년에 즐겨입던 원피스가 꽉 끼기 시작했다. 특히 배 부분이 도드라져서 곧 빠빠이할 것 같다. 몸의 변화에, 입던 옷이 작아지는 것에 왠지 모를 슬픈 기분이 들었지만, 나무의 존재는 나를 또 견디게 했다. 그래놓고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는 길. 체리맛, 복숭아맛, 녹차맛 3가지를 담고 부푼 기대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 아, 문방구에 들러 4절지를 사는데, 셀로판지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에서야 알게된 건 오늘 개기일식을 위해 사러 온 거였다니.삼시세끼를 보면서 부지런히도 퍼먹었다. 그러면서 고민하는 저녁밥, 뭐 먹지? 간단하게 진진짜라를 끓여먹기로 하고, 갖은 야채를 볶는 그 사람. 둘이서 먹고 자고 놀다보니 하루가, 일요일이 다 지나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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