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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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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월요일, 자기 직전만 해도 툭툭 통통거리던 나무의 터치. 눕자마자 곯아 떨어진 나는 태동을 느끼지 못했다. 아직 태동이 그리 센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숙면을 방해하지 않았던 밤. 5시 가까이 눈을 떴을 때 조용히 배 위에 손을 올려둔다. 나무 혼자서 톡톡거리고 있었다. 이 작은 움직임이 나를 들었다 놨다. 신기하고 귀엽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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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장트러블을 겪고 있는 남편은 오늘도 배가 아픈가보다. 뭐 때문에 아픈지 이유를 모른다. 어쨌든 매일 먹던 시리얼도 거부하고 물 한 잔만 마시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 다녀오면 내일 쉬니까 힘내자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우리만의 몸짓으로 빠빠이 인사를 나누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조심히 다녀와요 여보. . 윗집은 쿵쿵쿵. 이사를 갔는지 몰라도 안방 대공사가 시작됐다. 자다가 엄청난 소리에 깨어버렸다. 바로 내 위에서 들리는 드릴소리와 기계음. 그런데도 나는 다시 잠이 든다.. . 어슬렁 어슬렁 기어나와 요가매트를 펼쳤다. 시작하기 전에 손목, 발목, 다리 등 가볍게 돌리고 운동이 곧 시작됨을 몸에게 알려준다. 나무에게도 ‘오늘도 잘 부탁한다’며 알랑방구를 뀌는 나. 유튜브 선생님의 지도로 따라하는 동작들. 유연하지 않은 내가 유연해져보려고 하다가 남은 건 고통 뿐이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듯 나도 낑낑낑. 언제쯤이면 다리를 뻗고 상체를 숙이는 자세에서 발목이나 발끝을 잡을 수 있을까. 아유. 나무야 이숭이야 고생했다. . 창녕으로 출장간 남편이 돌아왔다. 갑자기 장을 보러간 우리. 현미와 요구르트, 우유를 사기로 했는데 키위랑 파인애플을 담고 불고기를 담고 쌈채소를 담고 뭔가를 이것저것 샀다. 네스퀵 초코우유도 샀지롱. 계산을 하고 주차장을 가는 길에 코끝을 자극하는 손만두. 다행히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밥을 안치고 추어탕을 데우고 불고기를 굽는다. 매일 한끼를 같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잘 먹는 우리가 감사하고, 그냥 다 감사한 날. . 베란다에 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맴돈다. 저녁 7시가 되기도 전에 어둠이 찾아온다. 계절이 바뀌었나 보다. 어제 좀 두꺼운 여름이불로 바꿨었는데도 날이 그새 추워졌다. 오돌오돌 떠는 남편이 안쓰러워 가을이불이 출동했다. 핑크이불로 핑크핑크꿈 꿔야지. 굿나잇!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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