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9월 15일 화요일,
긴팔 긴바지 잠옷에 꽤 도톰한 이불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왔다. 오돌돌 떨던 남편도 추운 기색없이 잘 자는 거 보면 괜찮은 온도였나 보다. 이제는 냉수 샤워도 추워서 따뜻한 쪽으로 돌려서 물을 틀고, 평소에 마시는 물도 냉수보다는 미지근한 물이 잘 넘어간다. 우리는 아직 여름에 미련이 남아 있는데, 알게 모르게 가을이 와버렸다.
.
두구두구 디데이.
2주 전 임신성당뇨 검사 이후로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남편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깨끗이 몸을 씻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무를 부른다. ‘나무야 좀 이따 만나자!’ 하면서. 초음파를 찍을 때 미리 초코우유를 마시면 아기가 잘 움직인다나, 임신을 하면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순전히 내가 마시고 싶어서 초코우유도 하나 챙겨 나왔다.
.
입체초음파 검사.
화면으로 보이는 나무는 또 그새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는 1100g이 되었고, 더 사람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검사에서 중요한 건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태어난 모습과도 비슷해 누구를 닮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부디 잘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신비주의 나무는 팔로 얼굴을 가리고, 탯줄에 꽁꽁 숨어있다. 나의 소망이었던 유연함은 나무에게로 갔는지 두 발이 얼굴보다 위에 있고 폴더처럼 접혀있다. 헤헤. 나무를 아무리 불러도, 배를 톡톡 건드려봐도 보여주지 않는 나무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는 걸로.
.
그래도 코랑 입을 봤다.
검지 하나를 남긴 채 애간장 녹이듯 보여주는 손가락도, 꼬물꼬물 발가락도, 퐁퐁 뛰는 심장도. 쿵쿵쿵쿵 심장소리를 듣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날까.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요 작은 존재가 나를 울렸다. 소중한 나의 나무 우리 나무야 고마워. 그리고 고생했어.
.
시내에 가서 고장난 카메라를 맡기고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와구와구 먹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크림라떼를 한 잔 마신다. 돌아오는 길에 세 번 만에 다 마신 건 비밀. 어제처럼 다시 늘어지게 보낸 남은 화요일.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를 보고 새우깡을 털고 딩가딩가 노는 중. 평일에 같이 노니까 더 재밌고 신나네. 그리고 자주 꺼내는 나무 초음파 사진. 오늘 정말 행복하고 소중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