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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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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화요일, 눕자마자 잠들었다. 아기를 돌본 것도 아닌데 우리는 꿀잠을 잤다. 그냥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참. 키위 두 개에 신호를 받고 화장실을 달려갔지만 엉덩이에 뿔이 나도록 힘들었던 어제. 자는 동안에도 아파서 꿈을 꾸기도 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밤. 힘내라 내 엉덩이, 내 괄약근.. . 일어나서 바로 체중계에 올라선다. 매일 매일 최고 기록을 세우는 기록보유자. 물론 나무가 크고 있지만 내가 크고 있는 게 확실하다. 예전에는 임신 중에 잘 먹어야 한다며 살 찌는게 복이었는데, 이제는 마음놓고 먹을 수도 마음대로 찌울 수도 없다. 언제부터 이런 것까지 관리하는 시대가 온 걸까. 앞자리 수를 두 번이나 바뀔 것 같아서 조마조마. 그럼에도 나무가 잘 크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컨트롤해본다. 출산 후에 다 뺼 각오로. 빠샤. .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지난 주에 절반만 보여준 나무를 만나러 간다. 다 보여줄지 안 보여줄지는 나무 마음. 집에서 요리조리 좀 움직이고 나무에게 잘 부탁한다며 알랑방구를 뀌었다. 그리고 달달한 초코우유 하나를 비웠다. 저번보다는 더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 속이 아픈 남편은 병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입체초음파 재검사.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서 나무를 기다리는 순간이 설렌다. 이번에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탯줄과 태반주변에 숨어있는 나무. 데자뷰처럼 폴더처럼 몸을 접어서 발을 위로 뻗었다. 화면에서 보이는대로 꿈틀꿈틀 툭툭 통통 태동이 느껴진다. ‘아, 저런 자세로 움직였구나’하는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30분 가까이 봐도 보여주지 않는 얼굴은 출산 후에 봐야할 것 같다고 했다. 오늘의 큰 수확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과 발. 귀엽다 귀여워. .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남편은 회사로 갔다.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부산에 다녀오신 엄마 아빠랑 통화를 하고 나무 이야기도 전했다. 나 어릴 적 모습이랑 비슷한 것 같다고 신기해하는 우리. 태어나서도 날 닮았을지, 남편을 닮았을지, 우리의 어느 부분을 골라서 닮았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 창밖을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린다. 나무에게 저기 보이는 자동차들 중에서 아빠차가 있을지 보자며 두리번두리번거린다. 이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타이밍이었지만. ‘아빠왔다’하고 자연스레 말하는 우리는 참 많이 변했다. 서로를 엄마 아빠라고 칭하다니. 나무의 존재에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다. 저녁은 떡국을 먹고 과자랑 요구르트를 먹고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를 보는 보통날. 일찍 자러가야지. 누워서 수다 떨어야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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