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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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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금요일, 11시에 눕고 새벽 3시에 눈이 떠진다. 방광을 비우고 나면 단단해진 배가 어느새 물렁물렁하게 바뀌곤 했다. 그러면 꾸물꾸물 움직이는 나무의 신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 나무가 깬 건 아닌 것 같고 동시간대에 톡톡 쓰담쓰담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우리.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나무. 평화로운 나무와는 달리 자세가 불편해서 잠들지 못 하는 나. 눈만 감고 있다가, 뒤척이다가 그렇게 아침이 밝아왔다. . 6시 50분 모닝콜을 했다. 잠결에 듣는 목소리도 좋은 우리 남편. 오늘 기온이 뚝 떨어져서 추울 거라고,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 다른 지역엔 영하 2도까지 내려갔다고 하던데, 통영도 공기가 차갑다. 담요를 돌돌 말아서 다시 눈을 붙인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잠을 채우고 일어났다. . 씻고 나와서 아침 간식을 챙겨 먹는다.
각자 외출을 하고 돌아오신 엄마 아빠는 문을 열자 마자 ‘나무야~’를 부르신다. 그냥 이 모습이 귀여우셔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더 예뻐해주실 것 같은데 벌써부터 나무는 무럭무럭 사랑을 받고 있었다. . 빵 하나 사들고 친구집에 놀러 갔다. 여름에 봤을 때보다 엄청나게 나온 배를 보며 놀란다. 간단히 먹을 줄 알았는데 내 친구는 밥을 하고 있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고 고기를 굽는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를 위해 된장찌개로 바꾸고, 심지어 꽃게도 넣을 거라고 했다. 꽃게 손질도 처음 해 보는 날. 애호박조림, 남편표 김치, 노릇노릇 삼겹살, 새우젓으로 한 끼 완성. 밥을 차려주는 친구가 고마워, 쉬는 날에 바쁘게 움직여가며 밥을 먹이려는 마음이 감사한 날. 밥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금세 한 그릇을 비웠다. . 방금 먹었는데 곧바로 베이글을 구워준다. 직접 만든 무화과잼, 블루베리잼으로 슥슥 발라먹고, 아로니아주스를 만들어 준다. 밀크티와 과자, 과일까지 대기 중. 티비를 보면서 떠들고 쉴 새 없이 먹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됐다. 내년 봄에 나무랑 같이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 집 앞 분식트럭에 가서 호떡, 가래떡구이, 떡볶이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좀 전까지 먹다가 왔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김치찌개와 한상차림. 엄마 아빠랑 셋이서 저녁을 먹고 배를 둥둥 두드리며 녹아내리는 밤. 남편은 회식 중이라던데 난 오늘 좀 일찍 누워야겠다. 등이랑 허리가 너무 아프다. 담 걸린 것 같은 목도 뻐근하고 하품이 계속 나오네. 하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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